기업들은 지난해 ‘악몽’ 같은 한 해를 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란 불가항력적인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코로나19 사태는 3월부터 기업에 본격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공장을 셧다운하고, 인력을 줄이고, 대대적인 감산에 들어간 기업이 많다. 하반기 들어 일부 산업의 업황이 호전되고 일부 기업의 실적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선 기업을 규제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잇달아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 경제계 원로들이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기업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쓴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작년 말 국내 50대 그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설문에 응답한 42개 기업 중 70.7%가 규제 법안 탓에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지난해 기업들은 절박했다. 대내외적인 경영 환경 악화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체력으로 버티면서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아야 했다. 악재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사업 기회를 찾아 나섰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첨단산업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고, 큰 성과를 냈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선방한 데는 기업들의 저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는 올해, 기업들은 격차를 벌려 시장 지배력을 굳히는 데 총력을 쏟을 태세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전자는 작년 1~3분기에만 연구개발(R&D) 분야에 16조원 가까운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또 같은 시기 시설투자에도 약 25조5000억원을 썼다. 이 같은 과감한 투자는 고스란히 성과로 돌아왔다. 작년 3분기 분기 기준 역대 최대인 약 67조원의 매출을 거뒀다. 또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달 11일부터 온라인으로 열릴 예정인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1’에서 삼성전자는 TV, 생활가전, 모바일 등의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신제품과 기술을 대거 쏟아낼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 상반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처음 적용한 ‘아이오닉5’를 내놓는다. 1회 충전으로 500㎞ 이상 주행할 수 있다. 급속충전기를 쓰면 18분 안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여기에 E-GMP를 적용한 제네시스 JW(프로젝트명)와 기아자동차 CV(프로젝트명)도 올해 나온다. 해외에선 중국 시장 입지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 본격 진출에 앞서 이미 대표 모델 G80와 GV80를 공개했다. 중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SK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강화로 경영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 작년 말 한국 기업 최초로 ‘RE100’ 가입을 확정하며 ESG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보였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SK 각 계열사는 ESG를 중심에 놓고 사업 모델을 다시 짜고 있다. SK E&S는 새만금 간척지에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264만㎡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짓고 있다. SK건설은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경기 화성과 파주에서 가동했다.
LG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파주와 중국 광저우에서 월 13만 장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OLED TV 패널 판매량을 기존 400만 개 중반에서 700만~800만 개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작년 12월 초 출범한 LG에너지솔루션은 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적극 꾀한다. 미국 자동차 기업 GM과 배터리셀 합작 법인을 세우고 30GWh 이상의 배터리 제조 능력을 미국 내에서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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