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 기흥구를 흐르는 오산천. 보통 하천이라면 수량이 많지 않은 상류인데도 ‘콸콸콸’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기흥캠퍼스)에서 방류구를 통해 쏟아낸 물이 오산천을 수량이 풍부한 하천으로 바꿔놨다. 삼성전자는 오산천으로 매일 맑은 물 최대 4만5000t을 배출한다. 열흘간 물을 내보내면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공업용수로 사용한 물을 정화한 뒤 매일 오산천으로 방류하고 있다.
구 SP는 삼성전자에 2019년 합류한 물 전문가다. 포스텍 환경공학대학원에서 생물학적 수처리를 연구한 그는 사내에서 ‘수(水)믈리에’로 불린다. 필요한 물을 각 공정에 보낸 뒤 정화하는 과정까지 관리하는 그의 업무가 소믈리에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구 SP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이 지난해 9월 영국의 카본 트러스트로부터 ‘물 발자국’ 인증을 받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체는 먼지 입자 하나만 내려앉아도 품질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긴다. 수율(생산량 중 양품 비율)을 높이기 위해 물로 씻어내는 공정이 그만큼 중요하다. 미립자, 박테리아, 무기질 등을 제거한 ‘초순수’를 사용하는 이유다. 웨이퍼를 깎은 뒤 나오는 부스러기, 반도체에 주입하고 남은 이온 등을 모두 초순수로 씻어낸다.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과 가스를 제거하는 ‘스크러버’ 공정에도 물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할 때 수자원이 가장 중요한 입지 조건으로 꼽힌다.
그러나 국내에서 필요한 만큼 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은 가용수자원 대비 취수량이 40% 이상인 ‘물 스트레스 국가’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데다 여름에 강우량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공업용수를 공급할 수원지도 많지 않다. 삼성전자도 기흥사업장과 화성사업장에 필요한 물을 모두 팔당호에서 끌어다 쓴다. 가뭄, 환경오염 등으로 수자원이 파괴돼 팔당호의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면 최악의 경우 두 사업장 모두 가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
물을 정화하면 지역 주민의 불만과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오산천 살리기’와 같은 친환경 경영은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물 관리 노하우를 다른 사업장과 계열사에 전수할 계획이다. 먼저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에 있는 매곡천·용평천의 수질을 개선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물 정화 기술은 특허로도 출원될 전망이다. 구 SP는 “공정에서 쓰이는 약품 중 분해하기 어려운 물질을 미생물 반응을 활용해 정화하는 내용의 논문을 쓰고 있다”며 “논문이 완성된 뒤 특허를 출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인=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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