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네패스 청주2공장의 클린룸 안에 있는 적재함은 웨이퍼(반도체 원판)로 빼곡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들이 후공정(가공)을 맡긴 제품들이다. 라인 안쪽으로 들어가니 로봇이 1초마다 ‘칙’, ‘칙’ 소리를 내며 웨이퍼에서 아기 손톱만 한 반도체 칩을 하나씩 집어 웨이퍼보다 약간 큰 패널로 옮겨 붙이고 있었다. 이 패널이 장비 안에 들어갔다 나오니 칩에 입출력 단자 등이 붙었다. 남병석 네패스 반도체기획팀장은 “반도체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라며 “마지막 공정에선 칩을 잘라서 스마트폰업체 등에 보낸다”고 설명했다.
최근 삼성전자, TSMC 같은 파운드리업체들은 직접 패키징을 하지 않고 ‘OSAT(반도체 조립·테스트 외주업체)’라고 불리는 전문업체들에 맡긴다. 반도체 공정이 점점 전문화, 분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징 시장은 올해 512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 649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ASE, 미국 앰코 등이 1~2위 업체인데 네패스는 이들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업체로 꼽힌다.
2015년 이후 5년 연속 흑자폭을 키우며 성장하던 네패스도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다. 매출은 2019년(3516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작년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5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악재가 겹쳤다. 네패스가 주로 패키징하는 제품은 스마트폰용 PMIC(전력반도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작년 상반기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면서 덩달아 스마트폰용 반도체의 패키징 수요도 감소했다.
최근 파운드리업체들이 초미세공정에 진입하면서 칩의 크기는 작아지고 기능은 많아졌다. 기능이 늘어난 만큼 패키징 때 칩에 붙여야 하는 입출력 단자 수도 급증했다. 네패스가 개발한 FOWLP 기술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엔 유럽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에서 패키징 물량을 수주했다.
차세대 기술은 ‘PLP(패널레벨패키지)’다. 칩을 옮기는 패널 크기를 기존 지름 30㎝ 정도의 원판에서 ‘가로·세로 600㎜’ 패널로 키운 것이다.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패키징하기 위해서다. 생산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네패스와 고객사 모두 이익이다.
관건은 많은 칩을 붙인 패널이 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네패스는 과거 4.5세대 터치패널을 제조했던 노하우를 활용해 수율을 잡았다. 현재 북미 반도체업체 제품을 테스트 중인데 3월께 납품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PLP 기술만 놓고 보면 ASE, 앰코 등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FOWLP 등 고급기술을 활용한 패키징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김용수 네패스 경영지원실 전무는 “현재 6위권인 고급패키징 순위를 2023년까지 ‘톱3’로 올리고 반도체 부문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청주=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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