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가 못하는 것들

입력 2021-01-04 17:39   수정 2021-01-05 00:35

잘하고 못하는 것을 따져보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불편할 정도로 못하는 것은 술, 골프, 외국어 회화라 고백해야겠다. 첫인상이 말술을 불사할 것 같은 호걸형(?)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다. 실제는 소주 두 잔이 생리적 정량이다. 오해도 받았다. 교학처장 때 모시던 총장님은 예술계 공인 ‘술의 신선’이었다. 식사 때마다 그분은 호쾌한 병술, 나는 홀짝거리는 잔술, 몸을 사린다고 오해해 때로 “왜, 내가 싫어요?”라고 힐책당하곤 했다. 당대의 주선께서야 술 못하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량이 곧 능력’이라는 등식에 익숙했던 세대의 편견이었다.

골프장 안에 작은 집을 몇 차례 설계했다. 현장 첫 방문 때마다 건축주들은 직접 부킹한 코스에 카트를 몰고 맞이했다. 골프장 주인이 직접 운전하는 라운딩이 최고의 접대라고 골프광들은 입을 모은다. 건축주들은 당연히 내가 골프를 즐기리라고 예단하고 최상의 영접을 준비한 것이다. 골프를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여러 골프 행사에 인사말을 해야 할 자리가 잦아졌다. 그때마다 앞부분에 골프를 못한다는 고백부터 해야 했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골프를 화제로 올리다가도 내 눈치를 보니, 이 또한 본의 아니게 미안해해야 한다.

외국어, 특히 영어를 읽고 쓰는 아쉬움은 없는데 말하기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겨우 여행이 가능할 정도니 정교하고 깊은 대화는 불가능하다. 사회적 지위와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회화에 능통하리라는 국제사회의 예단도 불편하다. 공식 외교적 자리는 통역에 의존해 해결할 수 있지만, 개인적 비공식 만남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외국어로 학술적 토론이나 개인사를 유창하게 나누는 이들이 가장 부럽다.

지난해는 코로나19가 지배한 불안과 불편의 시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개인적 단점을 잊을 수 있어 조금은 다행이었다. 첫 만남의 술자리도 자주 없었고, 골프대회는 거의 사라졌으며, 국제회의나 행사는 전부 취소됐다. 잦은 집밥에 곁들인 일상 와인으로 오히려 주량이 약간 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동네 뒷산 등산 기회도 잦아졌으니 골프 대신 운동을 한 셈이다. 이메일을 통해 문자로 외국과 소통하니 불편함도 적었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올해도 계속된다면 예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술 잘하는 체질이었으면 이미 건강을 크게 상했을 것이다. 골프를 즐겼다면 주말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회화에 능통했으면 잦은 국제사회 소환으로 더더욱 분주했을 것이다. 이리 보면 오히려 축복인 것도 같지만 그래도 불편하다. 육체적 한계인 술은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골프는 꼭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없다. 그러나 외국어는 노력한다면 좀 늘겠지, 새해에 도전할 작지만 어려운 목표로 리스트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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