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결혼 후 삶을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다” ‘인연’이라는 단어는 가슴팍 한가운데에 조금씩 조금씩 스며든다. 각자의 여정 속 뜻 모를 울적함에 멍드는 순간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삶의 동반자, 누군가와 미래를 기약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 아닐까.
그룹 ‘룰라(Roo'Ra)’ 활동으로 90년대를 풍미하고 이제는 한 남편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김지현. 그래서인지 몰라도 촬영장에서 만난 그의 미소는 유독 안온하고 애틋해 보였다. 화려했던 20대에는 마음 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결혼 후 모든 걸 내려놓고 살 수 있게 됐다고.
그런 의미에서 김지현에게 남편과 아이들은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새로운 사람과 사랑으로 맺어진 그 인연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고, 결국 내면의 단단함으로 나아가 오늘을 완성했다.
Q. 이번 화보 촬영, 기대감을 만족했는지 궁금하다
“촬영장에서 처음에는 긴장해도 서서히 몸이 풀리는 타입이다. 요즘 좀 살이 찐 것 같아서 그게 신경 쓰이더라. 촬영 자체는 재밌었다(웃음)”
Q. 2016년 2세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했다. 유튜브 채널 ‘부부동산TV’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더라
“남편이 부동산에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채널A ‘아빠본색’에서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걸 유튜브 방송 콘텐츠로 맞춰보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근 10년 만에 가장 똑똑한 발상이다(웃음). 남편도 부동산을 계속해왔지만 뭔가 다른 콘텐츠를 보여줘야겠다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남편이 직접 발로 뛰고 찾아본 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정보만 소개한다. 이 정도의 알짜배기 정보를 모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송에서 보여드릴 부동산 정보를 찾는 과정도 참 쉽지 않다. 모든 부분을 깐깐하게 검토한 후 비로소 방송에서 다루게 되는 거다. 이 과정을 거치고 실제로 판매한 적도 있다. 우리가 소개한 부동산이 판매됐다니 정말 기쁘더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물질적인 이익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 채널이 점점 발전하면서 댓글도 많이 달리게 되고, 상담 문의도 들어온다”
Q. 그렇다면 이런 유튜버 활동이 엔터테이너로서 긍정적인 측면이 큰 건가
“그렇다. 방송인 활동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연예인들의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느꼈지만 생각해보니 좋은 부분이 많더라. 방송 활동을 계속 쉬느니 대중들과 소통을 꾸준히 하는 게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대해서 1년 동안 고민하던 중 남편과의 유튜브 채널을 생각하게 됐다”
Q. 1994년 룰라를 데뷔하기 이전, 어쩌다 가수를 준비하게 됐는지
“어렸을 때 꿈은 자주 바뀌지 않나.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 앞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자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후 안양예고 시절 뮤지컬에 대한 꿈 때문에 극단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한 작곡가분의 눈에 띄어 가수 제의를 받게 됐다. 그렇게 3년간의 연습생 생활 이후 지인의 소개로 룰라 오디션을 보게 된 거다. 사실 당시의 나는 발라드 가수를 원했고 룰라는 댄스 음악을 지향하는 그룹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확 끌리지는 않았다(웃음)”
Q. 가수는 목소리가 생명이지 않나. 그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유전적으로 목소리를 잘 받은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비음이 심한 편이라 남들이 봤을 때 조금 섹시해 보일 수도 있고, 유니크해 보였을 수도 있다(웃음). 우리 노래에서 여자 파트의 키가 높았기 때문에 유독 시원시원하게 느낀 분들이 많다”
Q. 룰라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어렵게 느껴졌나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웃었다. ‘무슨 이런 노래가 있나’ 싶더라. ‘비밀은 없어’ 같은 경우에는 너무 올드하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이후 ‘날개 잃은 천사’를 작곡했던 최준영 씨가 편곡을 해주신 뒤 확 달라졌다”
Q. 4집 ‘All System Go’의 수록곡 ‘3!4!’ 때부터는 채리나의 보컬 실력이 재발굴 되었다
“이전과 달리 ‘3!4!’ 곡에서는 채리나 씨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프로듀싱하게 됐다. 당시 어린 나이로 영입됐기 때문에 더 영한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다. 노래 자체가 중독성 있고 밝아서 지금 들어도 정말 명곡이라고 느낀다. ‘듀스(DEUX)’의 이현도 씨가 굉장히 잘 만든 곡이다. 3집 ‘Reincamation of the Legend’ 표절 시비 후 낙심하고 있을 때 이현도 씨가 ‘그러지 말고 미국으로 와서 작업해보자’라는 말을 듣고 바로 찾아가게 됐다”
Q. 그때 당시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기뻤다. 이현도 씨 자체가 정말 내로라하는 뮤지션이기도 했고, 워낙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일단 미국에 간다는 말 자체가 좋기도 했고(웃음). 3개월 동안 그곳에서 작업하며 지냈다”
Q. 이후 5집 ‘The Final’ 때 잠시 탈퇴해 솔로 노선을 걷기도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잘되진 않았다. 그래도 차트 10위권까지 올라가긴 했지만(웃음). 팀을 잠깐 나가게 된 이유는 멤버들 간의 불화가 아닌 소속사와의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Q. 룰라 음반에서 개인적인 사연이 돋보이는 곡을 꼽자면
“6집 ‘Six N' Six’의 수록곡 ‘기도’가 아닐까. 솔로 활동 이후 ‘다시 한번 뭉쳐보자’라는 이상민 씨의 부름을 받게 됐는데 이 곡을 통해 룰라에 컴백하게 됐다. 최준영 작곡가님을 비롯해 여태까지 룰라 곡을 프로듀싱해주셨던 분들과 만나 작업했다는 점에서 더 인상 깊었다”
Q. 일상생활 속 팀 멤버들이 가장 생각날 때는
“지금보다도 솔로 활동 당시에 멤버들 생각이 많이 났다. 무대 위에서 나를 돋보이게 해줬던 건 전부 멤버들 덕분이더라. 그때 소중함을 크게 느낀 것 같다. 멤버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그런 감정으로”
Q. 이상민, 채리나와 새로운 음반을 준비할 계획은 없나
“아직은 없다(웃음). 솔로 1집 ‘캣츠 아이’ 이후에 2집 ‘Second Time’을 이상민 씨가 프로듀싱해서 낸 적이 있는데 결과가 썩 대단하지는 않았다(웃음). 물론 곡 작업에 룰라 멤버들이 도와줬던 만큼 그림은 좋았지만 말이다. 이후의 룰라 음반 활동 자체는 아직 미정이다. 사실 우리는 해체한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거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까지 공연이 쭉 잡혀 있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이상민 씨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또 새로운 앨범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5주년은 놓쳤으니 30주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뭉쳐보고 싶다”
Q.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그룹이지만 여러 사건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특히 리더 이상민은 지금 와서 보면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는지
“워낙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이라서 뭔가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Mnet ‘음악의 신(The god of music : 오디션과의 전쟁)’ 이후 MC로 이렇게 부활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방송을 끝으로 사업을 하거나 프로듀싱을 도전할 줄 알았는데 방송 MC가 된 건 지금 봐도 신기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본인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을 거다. 과거에 이상민 씨에게 직접 예능 프로그램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해야 한다’라고 말하더라. 그만큼 이상민 씨는 예능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다”
Q. 그러면 이상민이 ‘음악의 신’을 출연한다고 했을 때 미리 말해줬던 건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가족처럼 편한 사이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일일이 말하진 않는다. 그냥 TV에 나오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긴다(웃음)”
Q.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그룹이지만 여러 사건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특히 이상민은 지금 와서 보면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기 쉽지 않았겠다
“사실 안쓰러운 감정이었다. 당시의 나는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그 고난을 너무나 잘 이겨내 줬다는 점에서 고마움이 크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Q. 룰라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이상민은 리더십이 있었나
“그렇다. 그때부터 이미 아이디어가 넘쳐서 프로듀서분들께도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했고, 실제로 반영된 게 많다. 그런 부분이 남달랐던 것 같다”
Q. 이상민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지만 신정환도 그에 못지않았다
“얼마 전 JTBC ‘아는 형님’에 함께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기가 많이 죽어 있더라. 반응이 너무 안 좋다 보니 본인도 당황스러웠을 거고. 최근에 유튜브 활동을 새롭게 하더라. 이제는 아이도 있으니까 본인만의 영역에서 잘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Q. 전공이 연극영화과였던 만큼 연기에 대한 꿈도 컸던 것 같다. 연기할 때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극영화과를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는데 현실은 쉽지 않더라. 그때 큰 장벽을 느꼈다”
Q. 그렇다면 드라마 속 새로운 역할이 들어온다면 맡을 의사가 있나
“내게 맞는 역할이라면 고민해볼 것 같다. 지금 와서 멜로 역할의 주인공을 맡을 수는 없겠지만 편안한 이미지에 맞는 역할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은 연기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MBC ‘서프라이즈’에서 잠깐 단역 연기를 한 적 있는데 정말 재밌는 거다. 살아 있는 느낌이 다시 들 정도로 새롭게 다가왔다. 기회가 된다면 조그만 역할이라도 뜻깊은 마음으로 맡아보고 싶다”
Q. 만약 가수를 안 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가정주부? 가수를 안 했다면 조금 일찍 결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스튜어디스. 가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널리 널리 움직였을 거다(웃음)”
Q. 연예인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편안한 마음으로 나서는 것. 나의 20대 연예계 생활은 정말 굵고 짧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스케줄도 힘들었지만 마음 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과 결혼한 후에 가장 감사했던 점은 모든 걸 내려놓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마음 편한 게 없더라.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나서니 방송도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선우용녀 선생님이나 이순재 선생님 연기를 보면 정말 편안하게 임하시지 않나. 그런 것처럼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열심히, 편안한 마음으로 나서면 큰 결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남편과의 결혼을 약속했나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때였다. 사업도 기울이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남편이 ‘더이상 손해 보기 전에 얼른 접어라’라는 조언을 해줬다. 주변에서 그런 조언을 했다면 한 귀로 흘렸겠지만 남편이 말해준 조언이었기 때문에 바로 접게 됐다. 그만큼 객관적인 관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거다. 내가 사업을 다 정리하고 힘든 시절에도 남편은 묵묵하게 옆에 있어 줬고 바른말로 조언해줬다. 처음에는 그렇게 딱딱한 조언이 기분 나빠서 싸운 적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다 확실한 말이더라. 그런 부분에서 든든하고 똑똑하다고 느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남은 일생을 편하게 즐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6년 동안 연애를 했는데 만나면서 이혼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내가 키워야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웃음)”
Q. 6년 동안의 연애, 딱 ‘결혼해야겠다’ 느꼈던 시점이 있던 건가
“사실은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만났던 사람이었다. 결혼 자체는 빨리 진행하려고 했는데 그다음 해에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신 거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기하다 보니 일정이 계속 미뤄지게 됐다”
Q. 라이프스타일은 잘 맞는 편인지
“물론이다. 음식에 대해서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둘 다 소박하게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어 추석 때 내가 친정이 없어서 못 찾아가는데 그 대신 전주로 함께 여행을 간다. 유명한 막걸리 식당을 하나하나 찾아서 나를 데려다줄 정도로 센스가 있다. 나도 그런 소소한 행복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Q. 그러면 요즘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상대는 남편인가
“그렇다. 남편 직업 자체가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에 볼일만 보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그래서 함께 장도 보고, 집에 같이 있는 시간도 꽤 길다. 이제는 집 앞 슈퍼도 남편이 함께 가주지 않으면 재미없더라(웃음)”
Q. 곧 2021, 벌써 한 해가 끝나간다. 오늘을 인생 그래프상에 점으로 찍는다면, 어떤 굴곡의 어느 지점까지 왔을까
“중간보다 조금 위 지점 아닐까. 일직선으로 쭉 편안하게 가고 있다. 더 상승하면 좋겠지만 더이상 굴곡진 그래프를 갖고 싶지는 않다. 20대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내가 가장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을 수밖에 없었지만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후회도 한다. 결혼하면서 가장이 남편으로 바뀌니 정말 편하더라.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다”
Q. 새해 계획
“방송인으로서는 좋은 프로그램을 맡아 시청자분들께 인사드리고, 유튜버로서는 구독자 수를 늘려 이름을 더 알릴 계획이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천유신
스타일리스트: Biz 전윤주
헤어&메이크업: 미즈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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