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한국에 동결된 이란산 석유 구매자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를 위해 사용하는 방안을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이다. 코로나19 백신이 인도적 거래의 범주에 속한 만큼 이란 측 요청이 수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코백스 참여 위해 자금 필요…백신 구매 절차 마련"
호세인 탄하이 이란·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이하 현지시간) 이란 ILN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일 에샤크 자한기리 수석 부통령을 만나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의 사용 방안을 논의했으며, 코로나19 백신 등 상품을 사는 데 이 자금을 소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이어 탄하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아직 이 거래 또는 동결자금 해제에 대한 실질적 행동은 없다"면서도 "양국이 동결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최우선으로 이란의 동결자금은 백신을 구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란 보건부가 관련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이 수입할 백신이 한국에서 생산될 백신인지, 유럽이나 중국산 백신을 이란이 수입하고 한국의 금융기관이 동결 자금으로 이 수입 대금을 대신 치르는 방식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탄하이 회장은 "백신 외에 동결 자금으로 이란에 한국에서 우선해 들여올 수 있는 물품은 원자재, 의약품, 석유화학 제품, 자동차, 가전 부품 등"이라고 부연했다.
현재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엔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약 70억 달러(7조6천억원)가 동결돼 있다.
한국과 이란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이란과 직접 외화를 거래하지 않으면서 물품 교역을 할 수 있는 상계 방식의 원화 결제 계좌를 운용해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2018년 핵합의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강화,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려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다. 이에 이란 정부는 이 동결 자금을 해제하라고 한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주도의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및 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 정부 측에 한국 은행에 동결돼 있는 자금을 백신 대금으로 입금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은행들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금을 이전하는 방안을 마련해 이란 측에 제시했으나, 아직 이란 측의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을 거래하는 경우 제재의 예외가 허용되는 점을 고려할 때 코로나19 백신을 위해 동결 자금을 이용하는 방안이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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