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찰리 채플린으로 변장한 바리톤 김재일(사진)이 신랄한 가사를 뱉어 낸다. “높으신 분들은 아파트를 몇 채씩 갖고 있는데 서민 대책을 만들어요”를 한 음씩 끊어 부른다. 시위용 운동가요가 아니다. 작곡가 류재준(51)이 이달 발표한 가곡 ‘아파트 구입’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이다.
류재준이 아파트를 소재로 여러 인간 군상을 15곡의 가곡과 피아노 전주(프렐류드) 7곡으로 풀어낸 가곡집 ‘아파트’를 완성했다. 아직 녹음에 들어가진 않았다. 음반 발매와 함께 오는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열 계획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방배동 집에서 만난 그는 주제보다는 한국 음악계 현실을 먼저 설명했다. “지금껏 국내에선 ‘예술가곡’이라고 할 작품이 없었어요. 공연에서도 독일 가곡이 연주됐죠. 이번 음반을 통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같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류재준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거쳐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했다. 현대작곡가 고(故)강석희와 고(故)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에게 배웠다. 2015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문화공훈 훈장(글로리아 아르티스)을 받기도 했다.
그는 클래식 작곡가이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져왔다. 2015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을 발표했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서울국제음악제와 앙상블 오푸스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은 가곡집 주제로 이어졌다. 아파트를 둘러싼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 그는 “김소월의 시도 좋지만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며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재인 아파트로 주제를 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기가 묘하다. 부동산 정책이 거듭 실패해 집값이 폭등한 때 뮤직비디오를 발표해 현 정권을 겨냥한 듯 보였다. 정치적인 의도는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미 5년 전부터 아파트를 주제로 가곡들을 구상했습니다. 비판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고 싶었죠. 정책 비판은 아닙니다.”
작곡법이 독특하다. 한 옥타브 안에 들어 있는 12음정 중에서 단 네 가지만 활용해 화음을 짰다.
가장 공들인 건 ‘풍자’였다. 비극적인 가사를 경쾌한 선율에 얹은 것이다. 그는 “분노를 직접적으로 풀어내지 않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은 발랄하게 풀어내고 희극은 서정적으로 풀었다”며 “품위 있는 유머를 곡에 담았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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