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은 지난해 7월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5명의 대리급 직원을 파견 보냈다. 혁신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를 배워오라는 취지에서다. 이들은 6개월의 ‘은행 밖’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6일 은행에 복귀했다. 하나은행은 이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임무를 부여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별동대’의 귀환
하나은행의 새로운 연수교육(OJT)는 금융권의 이목을 끌었다. 직원을 스타트업에 보내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은행 내부에서도 관심이 쏠렸다. 최종 경쟁률이 35대 1에 달했다.파견 기업은 총 다섯 곳. 핀다(대출 비교 핀테크), 마인즈랩(금융 AI플랫폼), 옴니어스(패션 인공지능), 데이터마케팅코리아(빅데이터 디지털 마케팅), 자란다(교융 매칭 플랫폼) 등 각자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업체들이다. 하나은행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1Q 애자일 랩(Agile Lab)’의 지원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파견을 앞둔 직원들에게 “은행일은 잠시 잊고, 그 회사 직원이 돼 최선을 다해 일해달라”고 주문했다.
하나은행 양재 중앙지점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구교빈 대리는 6개월간 데이터마케팅코리아 본사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과 소셜커머스 리뷰를 가공하는 ‘비정형 데이터 분석’ 업무를 맡았다. 매일 숫자와 씨름하던 그에게 문자에서 트렌드를 뽑아내는 일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데이터마케팅코리아가 한 생활용품 대기업으로부터 수주받은 코로나19 이후의 매출 모형을 만드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일 데이터마케팅코리아 시무식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대출 비교 플랫폼을 운영하는 핀다에서 일한 정모 대리는 당분간 “핀다 정 아무개입니다”라고 전화응대를 할 계획이다. 핀다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차원이다. 정 대리는 은행에서 고객 응대를 하던 경험을 살려 핀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단체신용생명보험 서비스인 ‘대출안심플랜’을 도입했다. 대출을 받아간 고객이 불의의 사고 등으로 상환이 불가능해졌을 때 대신 남은 대출금을 갚아주는 단체보험이다. 그는 “스타트업의 일 처리 속도가 매우 빨랐고, 성과를 내니 점점 인정과 함께 발언권이 점차 세지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혁신 DNA 심는 사내벤처 요원으로
지난달 말 지 행장은 온라인으로 이들을 잠시 불러모았다. 혁신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이들에게 부여한 숙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디지털 전환과 초개인화가 추진되는 시대 흐름에 맞는 사업화 아이디어를 고민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분야를 '금융'으로 한정짓지 않았다. 다양한 이종 업종과의 융합을 꾀하려는 차원이다. 하나은행은 생활과 금융을 결합한 다양한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 직원은 파견기간 동안 스타트업 동료들에게서 금융 업무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제든 질문이 가능한 온라인 금융 Q&A’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금융분야의 ‘네이버지식인’ 처럼 은행원이 금융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시판이다. 실제 은행 상품 판매와도 연결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취업 준비생과 현직자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취업방’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졸업자의 도서관 입장을 거절하는 대학이 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점에 착안했다. 취준생들은 멘토를 찾기도 어렵다.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현직 직장인들과 연결 시켜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취향 저격 인테리어 플랫폼 △폐쇄회로(CCTV)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녀 행동 데이터 분석 △손님 맞춤형 소액 단기보험 판매채털 보험지갑 등의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하나은행은 이들에게 혁신 DNA를 은행 내부에 심는 역할을 맡길 생각이다. 조직이 나아갈 방향과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동료들과 나눠달라는 주문도 했다. 이들을 향후 사내벤처에 참여할 요원으로 활용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화 하는 작업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추가로 혁신기업 OJT를 계획하고 있다. 해외기업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젊고 유능한 직원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은행의 변화를 이끌 인재로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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