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는 ‘우리는 애국자들이고, 이것은 혁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불성설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말처럼 “시위가 아니라 반란”일 뿐이다. 설사 선거 부정이 있었다 해도 적법절차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고 공적기구의 판단을 구하는 수순이 상식이다. 대부분 국가가 ‘국민 저항권’을 헌법에 내재된 권리로 간주하고 있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집단행동은 폭동에 불과하다. 선거 부정의 증거가 미확보된 상황에서 폭력을 시도한 것은 ‘세계 최초 민주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수치스런 일이다.
무엇이 ‘민주주의 롤 모델’인 미국마저 내전을 방불케하는 극단으로 몰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대선이 ‘방아쇠’가 됐지만 연방정부 셧다운이 수시로 일어날 만큼 오래전부터 미국은 극심한 정쟁에 시달려왔다. 언론도 최소한의 중립 의무를 저버린 채 편가르기에 편승해 국론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시민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결집하며 스스로의 편파성을 강화해가는 탈(脫)진실의 길을 걸었다. 토크빌이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극찬한 시민사회의 자유와 역동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와 다르면 적으로 보는 저급한 정치 문화의 확산이 ‘민의의 전당 점거’라는 충격적 사태를 부른 것이다.
이번 사태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미국보다 더한 퇴행적 행태가 만연해서다. 소위 진보진영은 ‘민주 건달’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있고, 보수 진영은 자유민주적 가치마저 팽개친 채 정권 탈환에만 올인이다. 특정 정파의 대변지를 자처하는 어용 언론이나, ‘문빠’로 대표되는 비이성적 정치집단도 부쩍 늘었다.
이 판국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라는 여당 중진의원은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훈계하느냐”며 비아냥을 보탰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난하는 대북전단금지법 강행을 미국의 곤궁한 처지를 틈 타 물타기 하려는 얄팍한 수법이다. 헌법도 무시하고 ‘우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극단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전 같은 미국보다 더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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