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세종시의 아파트 매물이 들어가고 호가가 뛰었다는 기사를 쓰고 난 직후, 기자는 독자들의 메일을 몇통 받았다. 항의의 메일임에도 답변을 써서 보냈지만, 황당하게도 기자의 답변 메일은 세종시 인터넷 카페에 버젓이 공개됐고 악플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악플은 "집값이 기사처럼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숫자만 보고 비판으로 도배되는 메일 게시물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 즈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세종시민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독자는 "무주택자의 입장에서 세종시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대해 추가적인 관심과 기사를 부탁한다"는 호소했다. 메일을 보낸 독자는 "서울에 이어 지방 집값마저 폭등시키고 있는 주먹구구식의 정책 추진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
그나마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을 알아주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를 했다. 호가가 올라가고 기존 계약은 취소되고, 실거래가가 상승하는 흐름은 한두번 봐온 터가 아니었다. 당시 세종시를 취재하면서 걱정됐던 건 전세였다. 전셋값이 워낙 쌌던 세종시였지만, 집값이 오르면 외지에서 집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몰려오고 이들은 당연히 높은 전셋값을 끼고 사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전과 청주 등 주변 집값이 한창 오르고 세종시로 투자자들이 몰려오던 타이밍과도 맞아 떨어졌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세종시 천도론'을 꺼내들었던 건 지난해 7월20일이었다. 김 대표의 연설문 중간 제목에는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주거권을 보장하겠습니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완성해야 합니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앞서 발표한 7·10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며 "그렇게 했을 때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천도론이 발표되고 부동산 호가가 올랐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집값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인 김태년 대표는 '집값이 오르는 건 언론 탓'을 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초부터 7월20일까지 세종시의 아파트 매매가는 21.36% 상승했고, 전셋값은 13.88%가 올랐다. 그러나 천도론이 부각되고 매수세가 몰리더니 지난해 세종시 아파트의 매매가는 42.65%, 전셋값은 62.43%씩 각각 상승하게 됐다. 임대차보호법까지 힘을 보탰다. 5개월에 집값이 20%가 넘게 오르고 전셋값도 50% 가까이 오르면서 전국에서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당시 호가로 보도돼 비난을 받았던 '10억 아파트'는 이제 흔해졌다. 중대형의 매매가도 대출이 불가능한 선인 15억원을 넘었다. 지난달 한솔동 첫마을 3단지 퍼스트프라임(전용 149㎡)는 17억원에 매매됐고, 앞서 반곡동 수루배3단지 리슈빌더리버(전용 134㎡)도 17억원을 찍었다. 전용면적 84㎡를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새롬동 더샵힐스테이트는 지난달 11억5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대출제한이 걸리는 9억원 이상의 아파트는 중형 아파트인 옛 기준으로 30평~40평대에 줄줄이다.
한번 오르면 다 같이 오르고 한번 떨어지면 다 같이 하락하는 식이다. 그래서 임차인이 문제다. 세입자들은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면 아예 밖으로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경우라면 더 곤란해진다. 세종시는 학교가 많은만큼 원거리 통학보다는 근거리 통학이 대부분이다. 아파트마다 학교가 지정됐다. 아파트를 떠나면 학교를 전학가곤 한다. 집을 사서 가는 경우라면 뭐가 문제겠느냐만, 전셋값에 밀려 전학을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비참할 수 밖에 없다.
국평이라고 불리는 전용면적 84㎡기준으로 같은 주택형 비슷한 층수를 비교해보면 단기간의 급등이 나타난다. 어진동 3단지 더샵레이크파크의 경우 지난해 8월만해도 2억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지만, 지난달에는 3억5000만원에 나왔다. 4개월새 75%가 올랐다는 계산이다. 도담동 11단지 반도유보라의 전셋값도 작년 7월에 2억원이었지만, 지난달에는 3억9000만원까지 치솟아 두배 가까이 됐다. 5억원이 넘는 전세도 나왔다. 다정동 더하이스트에서 올해들어 5억1000만원 전세가 체결됐다. 도담동, 다정동 새롬동 등 집값이 10억원을 웃도는 일대의 아파트 전셋값은 줄줄이 4억원을 돌파하고 있다.
세종시에서 세입자로 버티면서 청약을 꿈꿔도 소용없다. 정부가 수차례 뜯어고친 덕분에(?) 일반인에게 돌아가는 세종시 아파트는 거의 없게 됐다. 올해 세종시 첫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던 6-3생활권의 ‘세종리첸시아 파밀리에’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전체 공급 물량 1350가구 가운데 전용 85㎡ 이하 일반 분양 물량은 고작 24가구가량에 그칠 것으로 전망돼서다. 전용면적 85㎡ 이하 기준으로 보면 1212가구 중 24가구다. 98%는 특별공급이고 단 2%가량만 일반에 배정된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단지 전체 공급 물량 가운데 신혼부부(20%), 생애 최초(15%), 다자녀(10%), 기관 추천(10%), 노부모 (3%) 등 58%가 특별 공급으로 배정돼야 한다. 여기에 세종은 이전 기관 공무원들에게 전체 물량의 40%를 추가로 특별 공급으로 배정한다. 이를 합하면 98%가 특별공급이 되는 셈이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적정한 수준에서 일반 (분양)공급이 될 수 있도록 시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행정수도 건설이라는 시 특성상 공무원에 대한 특별공급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공급 비율을 줄일 것이라고는 하지만 '새발의 피' 수준이다. 세종시에서 올해 아파트는 분양 5684가구, 임대 2177가구 등 7861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분양 아파트에서 일반가구를 제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500가구도 채 안될 전망이다.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세종시 천도론'을 들고 나와서는 결국엔 세종시 세입자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수장들이 연초부터 부동산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바라건데 시장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공무원들의 보유주택이 많으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전 대표의 텃밭인 세종시를 모델로 전셋값을 잡아보기 바란다. 생존과 직결되는 전세문제는 한시가 급하다. 뭐라도 성과를 보여주길 제발 바란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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