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에 묶여 있는 70억달러 규모의 이란 자금을 백신 등 인도적 물품 구입에 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 허가를 하면서 JP모간은행을 통해 결제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내용을 이란에 전달하고 백신 구매를 추진하려 했지만, 이란중앙은행은 “미국 은행인 JP모간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미국에 동결될 수 있다”며 대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이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은 이 같은 대안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재 이란은 JP모간을 경유한 거래를 하게 될 경우 한국 정부에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이 동결되면 한국 정부가 물어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급보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급보증에 준하는 절충방안을 찾는 것이 이번 협상단의 목표다. 백신 구입 자금 약 1억7000만달러 중 터키에 동결된 자금 5000만달러를 먼저 쓰고 우리 정부가 나머지 1억2000만달러를 결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10일 최종건 1차관과 함께 기재부 과장급 간부가 이란을 방문하는 것도 이 같은 결제 과정의 문제를 집중 협상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안팎에선 이란 자금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외환제도과장이 파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의 자금이 한국에 묶이게 된 것은 미국의 이란 제재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시작된 2010년 이란과의 자금 거래가 불가능해지자 양국은 우회 통로를 마련했다. 이란이 중앙은행 명의로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원유 수출 시 수출대금을 이 원화 계좌로 받는 형태로 거래를 이어왔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며 거래가 중단되고 자금이 사실상 동결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란과의 거래를 지속하기 위한 창의적인 해법이었다”며 “이 거래가 시작될 때만 해도 2018년의 강력한 제재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자금 동결 문제와 선박 나포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이 이란에 도착한 지난 7일(현지시간)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기자 브리핑에서 “한국 대표단이 한국 내 이란 자금 동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테헤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선박 나포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고 국장은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이 현지 활동 계획을 묻자 “외교부 상대방도 만나고 선박 억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양한 경로로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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