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트코인 관련 뉴스의 댓글창에서 수시로 ‘강제 소환’ 당하는 두 사람이 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1월, 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거래소 폐쇄도 목표”라고 말해 시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유 이사장은 방송에 나와 “비트코인은 사기”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이라고 날을 세웠다. 부풀 대로 부푼 가격 거품이 그 즈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2500만원대에 이르던 비트코인값은 한 달 만에 반토막 아래로 추락했다. 두 사람의 발언이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두고두고 분풀이 대상이 되는 이유다.
유 이사장이 비트코인에 맹공을 퍼붓던 방송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는 ‘가상화폐,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3년 전과 비교해 비트코인 시장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비트코인 거래의 주도 세력이 교체됐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줄고 해외 정보기술(IT) 대기업과 기관투자가들이 상승장을 이끌고 있다. 페이팔, 페이스북, JP모간, 피델리티, DBS 등이 가상화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가상화폐가 실물경제에 한층 가까이 다가올 수 있고, 최소한 사기는 아닐 것이란 기대감을 키운 ‘재료’들이다. 올해 CES(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에서 가상화폐는 5G(5세대), 자율주행차, 로봇 등과 함께 주요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은 금과 달러가 독차지한 안전자산 지위를 비트코인이 이어받을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는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무제한 돈 풀기’로 달러가치는 하락했고, 금값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희소성만 놓고 보면 금과 비트코인이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비트코인은 최대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설계돼 있다. 지금까지 1860만 개가량 풀렸고, 2040년쯤부턴 추가 공급이 없다. 큰손들의 비트코인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유한하니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2018년 1월 코인 광풍에 화들짝 놀란 정부는 ‘가상화폐 투기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전방위 규제를 꺼내들었다. 코인 거래에 여러 진입장벽이 생겼고, 가상화폐공개(ICO)는 전면 금지됐다. 코인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파악한 네이버, 카카오 등은 블록체인사업의 주무대를 해외로 옮겨버렸다.
정부 정책이 근시안적이고 무대포였다는 가상화폐업계의 하소연에는 귀 기울여 들을 대목이 분명 있다. 다만 이런 생각도 든다. 코인만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며 ICO에 열을 올렸던 수많은 스타트업을 기억한다. 이들의 실패도 전부 규제 탓이었을까. 수수료로 떼돈을 버는 거래소들이 건전한 투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풀이 잔뜩 죽어 있던 이 바닥에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고 한다. 박 전 장관과 유 이사장에게 ‘완패’의 굴욕을 안기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블록체인업계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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