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미국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소형 전술핵·핵잠수함 개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확대 등 핵무력 증강 카드를 꺼내들었다.
단순 위협용 핵무장 선언을 넘어 아예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고, 이를 고도화하겠다는 뜻을 대외에 공식 선언한 것이다. 핵을 일당 세습체제 유지의 방패로 삼는 동시에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와의 초기 신경전에서 협상 우위에 설 수 있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형적인 강경 전술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를 향해선 “하는 것 봐서 대응하겠다”는 식의 철저한 무시·외면 태도를 이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인 대북 유화정책을 편 지난 4년간 남북한 관계는 한발짝도 진전을 못하고, 북한에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만 벌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핵과 ICBM을 다시 공식 언급하며 도발했다. 김정은은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돼 핵무기를 소형 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하고 초대형 수소탄 개발이 완성됐다”며 “다탄두 개별 유도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연구 사업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7년 수소 핵폭탄 실험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이젠 다량의 소형 전술핵 무기와 살상·파괴력이 배가된 초대형 수소탄을 병행 개발하겠다는 야욕을 서슴없이 밝힌 것이다. ICBM과 관련해선 1만5000㎞ 사정권의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반도에서 미 워싱턴DC까지의 거리(약 1만㎞)를 넘어 아예 미 본토 전체를 넘겨버리겠다는 특유의 위력 과시에 나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공연히 밝히며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이른바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이번 당대회에선 비핵화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북한이 향후 미·북 협상이 재개되면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채로 핵 능력을 축소하는 핵 군축 회담을 하자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협력, 독자적인 대북관광 재개 사업 등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폄하한 것이다. 현재 북한이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남북한 관계 개선의 선제조건은 첨단무기 도입 금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이다. 하지만 당장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일정과 맞물려 있는 한·미연합훈련이 오는 3월 예정돼 있는 만큼 당분간 남북한 간 냉기류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계 개선 조건도 일방적으로 내걸었다.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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