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든 논 사이로 턱시도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신사가 걸어온다. 한 손에 박쥐우산까지 쥔 신사의 뒤로는 강아지가 쫓아온다.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과 비상하는 새들이 평화로움을 더한다. 장욱진(1917~1990)의 ‘자화상’이다. 이 작품의 반전은 오른쪽 하단에 작가의 사인과 함께 새겨진 숫자 ‘1951’에 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그는 고향인 충남 연기군으로 몸을 피했다. 전란 속에 저렇게 풍성한 논과 평화로운 광경이라니…. 장욱진은 그 시기에 대해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피란 생활이지만 고향에서 위안을 받으면서 창작욕이 샘솟았다고 한다.
인간·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그의 작품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3일부터 열리는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에서 만날 수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