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 막말' 의혹에도 징계 없었다…외교부 '제식구 감싸기'

입력 2021-01-11 10:18   수정 2021-01-11 11:25


외교부가 "인육을 먹어보고 싶다"는 등 폭언 의혹을 받는 외교관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외교부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징계 하지 않았다.

11일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외교부는 주시애틀총영사관 A부영사의 인육 관련 발언 의혹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한 뒤 "현재 조사 결과로 A부영사가 해당 발언을 했다는 혐의 사실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며 '불문' 조치를 했다.

외교부는 A부영사의 발언에 대해 "해당 외교관과 실무관 단둘이 있을 때 있었다고 주장된 것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할 만한 제3자 진술이나 객관적 물증이 없고 제보자의 진술내용 중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봤다.

외교부는 총영사가 행정 직원에게 퇴직을 강요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장관 명의 서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외교부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을 행정직원에게 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구체적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제보자, 주변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해 구체적인 언급내용은 확정 곤란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태규 의원실이 외교부 감찰담당관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제보자로부터 받은 제보 등을 종합하면 A부영사는 2019년 부임한 이후 공관 소속 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언어폭력을 가했다.

제보에 따르면 A부영사는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네가 퇴사하더라도 끝까지 괴롭힐 거다"라고 했다. 또 "이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하냐", "내가 외교부 직원 중 재산 순위로는 30위 안에 든다"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발언이 공무원으로서 적절치 못한 내용을 담은 경우도 있었다. A부영사는 "인간고기가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꼭 인육을 먹어보려고 한다"라고 하거나 "우리 할머니가 일본인인데 우리 할머니 덕분에 조선인들이 빵을 먹고 살 수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제보자들은 전했다.

이에 피해 직원들은 지난해 10월 A부영사를 신고했다. 직원들은 폭언과 욕설 외에도 사문서위조, 물품단가 조작, 이중장부 지시, 예산 유용, 휴가 통제, 시간 외 근무 불인정 등 16건의 비위행위를 신고했다.

하지만 감찰에 나선 외교부 감사관실 소속 감찰담당관실은 주시애틀영사관 소속 영사 및 직원들로부터 직접 참고인 진술을 듣지 않고 서면으로만 문답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감찰담당관실은 2019년 11월 24~29일 감찰을 벌인 후 2020년 1월 이메일로 추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외교부 감찰담당관실은 지난 16일 특정 직원에 대한 두 차례의 폭언 및 상급자를 지칭한 부적절한 발언 한 건 등 총 3건만을 확인했다는 조사결과를 이태규 의원실에 제출했다. A부영사는 이 세 차례의 언행 비위로 장관 명의의 경고조치를 받았고 주시애틀총영사관은 기관주의 처분을 받았다.

제보자들은 A부영사가 시애틀에 부임하기 전까지 외교부 감사관실에 근무했기 때문에 외교부가 감사관실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 '제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 의원실은 서면 문답이나 이메일 설문조사 과정에서 A부영사의 폭언과 부적절한 언사를 확인할 수 있는 문답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찰담당관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A부영사는 현재도 공관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7일 부임한 권원직 신임 시애틀 총영사는 최근 교민단체 간담회에서 "정말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일어났는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그는 "그동안 언론 등에 나왔던 해당 영사가 했던 발언이나 언행 등은 반박이 없었던 것으로 미뤄 모두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며 "총영사관 직원들이 내부 갈등을 덜어내고 한 팀으로 화합해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태규 의원은 "총영사의 퇴직 종용 발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장관 명의 서면 경고에 그친 것 역시 보편·상식적인 관점에서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강경화 장관의 조직 기강 강화, 비위행위 근절 의지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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