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양 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대를 막을 첫 단추인 아동학대 신고 제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신고자의 신변이 보호되지 않거나 신고 뒤에도 아이를 격리 보호할 시설이 부족하고, 부모의 재학대를 막을 대책이 미비한 탓이다.
신고의무자 신고 20%대 그쳐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의심사례 신고 3만8380건 중 신고의무자가 한 신고는 23.0%(8836건)에 그친다. 2016년(32.0%)부터 2017년(28.6%), 2018년(27.3%)에 이어 매년 감소 추세다.특히 2019년 신고의무자인 입양기관 종사자의 신고 건수는 단 1건이다. 정인양의 입양을 주선한 홀트아동복지회도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하고 부실하게 대응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현행법은 교사, 의료진, 아동복지시설 및 입양시설 종사자 등 24개 직군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정한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신고의무자는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되거나 의심이 될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신고의무자들은 “부실한 신고 제도 탓에 신고가 꺼려진다”고 입을 모은다. 신고자의 신변 보호가 어려운 점이 문제로 꼽힌다. 아동학대 신고를 한 뒤 신고자의 소속 기관이나 개인정보가 유출돼 부모에게 소송이나 협박을 당하는 일이 잦아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전북 순창에선 한 의료진이 만4세 아이의 학대 의심 정황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신분이 노출돼 해당 부모에게 두시간 넘게 폭언과 욕설을 들었다. 당시 신고 접수를 받은 경찰관은 신고자를 묻는 가해 의심 부모에게 "아침에 그 의료원에서 진료받았죠?"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유·초·중·고·특수 교사 800명에게 물어본 결과, 466명(60%)은 “아동학대 신고를 망설였다”고 답했다. ‘가해 주양육자의 위협’(14.1%), ‘신고 후 진행 절차에 대한 불신(10.8%)’, ‘신고 이후 소송에 시달릴까 봐(8.7%)’ 등이 이유로 꼽혔다.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가해 부모가 경찰이나 교육청에 신고자를 물어볼 때 ‘학교’라고 답하면 신고자가 담임 교사로 특정될 수밖에 없다”며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가 오히려 가해 부모들에게 소송을 당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60년 동안 민법에서 ‘자녀 징계권’이 인정됐다 보니 ‘우리 가정인데 왜 참견하느냐’고 따지는 부모가 도리어 많다”고 했다.
신고 뒤 격리시설도 '부족'
신고 뒤 아동을 보호할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 76곳이다. 쉼터 한곳당 정원이 5~7명임을 고려하면, 쉼터 전체 수용 인원은 500여명뿐이다.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3만8380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대 정황을 신고해도 아이를 격리할 시설이 부족한 데다 격리 뒤에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에게 재학대를 당하는 일이 많다”며 “신고해면 상황이 더 나빠지니 아이들도 학대를 숨기고, 교사도 신고를 꺼린다”고 말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아동학대 문제를 가정의 문제, 부모의 권한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탓에 신고의무자의 신고 의무 인식이 낮은 데다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 조사 등을 번거로운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선 '의심'만 되면 바로 신고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며 " 신고의무 미이행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반대로 신고했을 때 신고자의 보호 규정을 세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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