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국 의사당 로툰다 벽화

입력 2021-01-12 17:27   수정 2021-01-13 00:13

1783년 9월 3일, 미국 독립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파리조약’이 체결됐다. 7년을 끌어온 전쟁의 승리와 독립을 문서로 확인하는 조약 체결을 앞두고 대륙군은 오히려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전쟁 동안 지불하지 못한 군인들의 급료와 약속했던 연금에 대해 대륙회의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빈손으로 군대 해산을 맞을 수 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군대의 불만은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공화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마침내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을 신생독립국의 국왕으로 추대하고 왕정을 선포하자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모든 국가가 절대왕정 체제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고, 군권을 완전히 장악한 워싱턴이 국왕에 즉위하는 것은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었다.

그러나 장교들이 쿠데타 계획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워싱턴은 “애국심과 인내로 인간 본성이 도달할 수 있는 완전무결함의 끝판을 세계에 보이자”며 그들을 잠재웠고, 12월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처럼 한 사람의 자제와 인격이, 대부분의 혁명이 궁극적인 기치로 내건 자유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미국 혁명이 비극으로 치닫는 것을 막은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치의 상징이자 수호자로 전 세계에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미국 의사당 로툰다 홀에는 워싱턴이 군권을 의회에 반납하는 역사적인 장면과 죽은 후 신이 된 워싱턴이 농업, 해양, 전쟁, 상업을 주관하는 여러 신들에 둘러싸여 승천하는 모습이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에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이 자신의 머리에 직접 왕관을 쓰고 황제에 즉위하는 대관식 그림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는 황제가 됐지만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었고, 워싱턴은 신념을 지키고 시민으로 돌아갔지만 국민의 마음속에서 신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주 시위대가 미연방 의회에 난입해 단상을 점거하고 선거 결과의 최종 확정을 저지한 사태가 벌어져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모든 국가들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대중민주주의의 모순과 한계점, 포퓰리즘과 선동 정치의 추악한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비단 미국만 겪는 상황은 아니지만 현장 바로 위에서 내려다봤을 벽화 속의 워싱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한때 훌륭했던 리더들이 ‘국민이 원한다면’이란 착각 또는 유혹, 포장으로 결국 자신뿐 아니라 나라를 망친 역사 속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중대한 갈림길에 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안다. “몰라서가 아니라 양심과 용기가 없어서, 독선과 고집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속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길을 선택한다”는 영화 속의 대사가 새삼 마음을 울리는 요즈음 글로벌 정치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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