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객은 영구적으로 변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코로나19가 글로벌 리테일(소매)산업에 ‘뉴 노멀(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대면 소비로 인해 과거 ‘틈새’였던 ‘클릭 쇼핑’은 이제 ‘대세’가 됐다.
유통, 식품, 뷰티 등 올해 국내 리테일산업은 그 어느 해보다 격변을 겪을 전망이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 부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변화한 고객의 요구에 광적으로 집착”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코로나19 이후 보복성 소비의 등에 올라탄 기업엔 전례없는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추세를 가속화시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년 전(12조8521억원)보다 17.2% 증가한 15조631억원이었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15조원을 넘어선 것은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전체 소매 판매액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육박한 29.2%로 역대 최고치다. 유통업계에서 자체 추정한 ‘온라인 침투율’은 35% 수준이다. 이 수치가 얼마나 더 상승할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싫증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 ‘온리(only)’ 전략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온·오프라인 통합을 통한 ‘옴니 채널’ 구현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옴니 채널 구현엔 대형마트 3사가 가장 적극적이다. 150개 안팎에 달하는 전국 오프라인 점포를 빠른 배송을 위한 물류 거점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각자 움직였던 이마트와 SSG닷컴은 올해 다양한 ‘통합 실험’에 나설 전망이다. 신선식품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다. ‘쓱’에서 주문하면 전국 이마트에서 배송해주는 방식이다.
롯데쇼핑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마트 장보기 상품을 중심으로 주문 후 2시간 내 배송받는 서비스를 비롯해 롯데슈퍼에선 퇴근길 1시간 배송 실험도 진행 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비신선식품 분야에서 쿠팡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정면승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대형마트가 특유의 소싱 능력을 발휘한다면 신선식품 분야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홈플러스가 12일 산지직송관을 연 것도 이런 맥락이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생산자가 산지에서 직접 택배 발송하는 서비스다. 홈플러스는 품질 관리를 위해 오프라인 바이어와 온라인 상품기획자(MD)로 구성한 ‘산지직송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다. 올해 전국 200개 농가와 협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유통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산자와 판매자가 중간 유통 단계 없이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는 DTC(direct to consumer) 시장이 커지고 있다. 거래액 기준으로 네이버 쇼핑이 2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중소상인이 쉽게 입점할 수 있는 스마트스토어를 확대하고 ‘라이브방송’ 등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제공해 ‘쇼핑 플랫폼’으로서의 위력을 강화하고 있다. ‘선물하기’로 출발한 카카오커머스는 제조사들의 DTC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올해 식품 트렌드를 ‘집밥 2.0’ 시대로 규정했다. 1.0 시대 간편식은 ‘간편하고 맛있는 것’이면 충분했지만 2.0 시대 소비자는 ‘간편하면서도 신선하고 건강한 것’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이 컸던 화장품업계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디지털 전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선보인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소비자의 피부 색상에 어울리는 입술 색상을 추천하고, 현장에서 바로 립 제품을 제조하는 ‘립 팩토리 바이 컬러 테일러’ 등을 선보였다.
LG생활건강은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올해 ‘후’ ‘숨’ ‘오휘’ 등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경쟁력을 키워 국내외 시장에서 입지를 더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중국, 일본, 미주 지역의 비대면 사업 비중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위기가 왔을 땐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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