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은 어떻게 세계의 식단으로 자리잡았을까

입력 2021-01-18 09:00  


국수는 누구나 좋아한다. 밥보다 면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이 먹는 짜장면은 하루 150만 그릇으로 추정된다. 또 세계라면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라면을 연간 38억 개, 1인당 76개를 먹는다. 연간 소비량은 7위지만, 1인당 소비량은 2위 베트남의 52개를 앞서 단연 1위다. 한국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면 요리는 아시아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인의 주요 식단으로 자리잡았다.

국수는 한자로 면(麵), 영어는 누들(noodle)이다. ‘noodle’은 독일어로 국수를 뜻하는 누델(nudel)에서 왔다는 설과 라틴어로 매듭을 가리키는 노두스(nodus)가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로마시대의 유적에서 파스타를 만드는 도구가 발견된 것을 보면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누들로드 위의 밀과 국수
국수는 쌀 메밀 등으로 만들지만 주원료는 밀이다. 밀은 BC 700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처음 재배됐다. 이 지역에서 사용한 맷돌이 유물로 남아있다. 밀은 쌀과 달리 6~7겹의 질긴 껍질을 벗기고 빻아 밀가루를 채취하기까지 상당한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반면 기온과 습도가 높은 아시아에서는 밀 대신 쌀을 주로 재배했다. 쌀은 노동집약적이면서 밀보다 산출량이 많아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

밀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BC 5000년께 중국으로 전래됐다. 황하유역은 기후가 서늘하고 건조해 밀 재배에 적합했다. 국수도 밀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서 번성했다. 거꾸로 중국의 국수 문화가 중동과 유럽에 전파됐다는 주장도 있다. 황하 상류의 라지아 지방에서 BC 2000년께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이 발견돼 중국 기원설의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국수의 기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천 년 걸쳐 형성된 실크로드는 비단만 오간 길이 아니다. 밀과 국수도 이 길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전파됐다. 학자들은 이 길을 누들로드라고 명명했다. 지금처럼 긴 면은 3세기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서 생겨났다. 중국에서 면이 대중화한 것은 11~12세기 송나라 때다. 송나라는 상업이 번성하면서 인구도 급증해 거대 도시가 생겨났다. 도시의 수많은 노동자가 빠르게 한 끼 식사를 때울 음식으로 국수만 한 것이 있을까? 국수는 최초의 패스트푸드였던 셈이다.
젓가락 문화권과 밀접한 면 요리
면은 젓가락 문화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화사학자 Q. 에드워드 왕의 저서 《젓가락》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젓가락은 중국 장쑤성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가느다란 동물 뼈다. BC 6000~BC 5500년 사이의 유물로 추정된다. 초기의 젓가락은 식사 도구보다는 조리 도구로 쓰였다. 뜨거운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집거나 휘젓고, 땔감을 다루는 데 젓가락을 썼다.

젓가락은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의 문화다. 이것이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전파됐다. 현재 세계에서 젓가락 사용 인구는 28%로 포크와 나이프 사용 인구와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 젓가락의 차이다. 원탁에 빙 둘러앉아 식사하는 중국인은 굵고 긴 나무젓가락을 쓴다. 밥공기를 들고 먹는 일본인은 반대로 짧은 나무젓가락이다. 한국인만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쓰고 길이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다. 한반도에 금 철 구리 등의 매장량이 풍부해 일찌감치 금속가공 기술이 발달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파스타는 귀족이나 성직자가 먹는 귀한 음식
지중해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빵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았어도 면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BC 1세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그리스인들이 얇은 반죽을 기름에 튀긴 ‘라가눔’을 먹었다고 기록했다. 이것이 5세기 로마 요리책에 ‘라가나’로 소개됐다. ‘라가나’는 얇은 반죽과 고기가 들어간 속을 층층이 쌓아 익힌 것이다.

말린 국수가 처음 등장한 곳은 동지중해 연안이었다. 5세기 예루살렘 탈무드에 등장하는 ‘이트리아’는 생면 건면 등 모든 면을 가리켰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서 1154년 보통 밀보다 단단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듀럼밀로 만든 건조 파스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전까지는 생파스타 위주였다. 건조 파스타는 생파스타와 달리 장기 저장과 대량 운송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시칠리아가 902~1091년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식 건면이 전래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파스타는 1200년을 전후해 이탈리아 본토와 프랑스로도 전파됐다. 특히 나폴리는 ‘마카로니의 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파스타는 여전히 품이 많이 들어 귀족, 성직자나 먹는 귀한 음식에 속했다.
배고픔을 몰아낸 라면 혁명
오늘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수는 라면이다. 세계적으로 한 해에 1000억 개가 팔린다. 라면의 어원은 중국어 라미엔이다. 라미엔의 일본어 발음이 라멘이고, 우리말로 라면이 됐다. 중국의 라미엔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조리가 쉽고, 가격도 싼 즉석라면으로 재탄생한 데는 한 일본인 사업가의 노력이 있었다. 1950년대 닛신식품 설립자인 안도 모모후쿠는 한 선술집에서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튀기는 것을 보고 라면을 착안했다. 당시에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보급됐지만 밥 위주의 식습관 탓에 외면당했다. 안도는 연구 끝에 면을 튀겨 빠른 건조와 장기 보관이 가능한 라면을 처음 세상에 내놨다.

안도는 라면 발명으로 큰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제조 특허를 포기해 누구나 기술을 이용하도록 했다. 그 덕에 한국에서 삼양라면이 나올 수 있었다. 누구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한 라면은 세계 음식 문화사의 혁명으로 평가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동양에서는 쌀로 만든 밥, 서양에서는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이 된 이유와 그럼에도 국수가 두 문화권에서 애용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② 안도 모모후쿠가 특허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라면이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식품이 됐을까.

③ 예전에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주로 먹는 음식이었던 라면이 종류도 다양해지고 빈부를 떠나 모든 한국인이 선호하는 음식이 된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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