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누구나 좋아한다. 밥보다 면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이 먹는 짜장면은 하루 150만 그릇으로 추정된다. 또 세계라면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라면을 연간 38억 개, 1인당 76개를 먹는다. 연간 소비량은 7위지만, 1인당 소비량은 2위 베트남의 52개를 앞서 단연 1위다. 한국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면 요리는 아시아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인의 주요 식단으로 자리잡았다.
국수는 한자로 면(麵), 영어는 누들(noodle)이다. ‘noodle’은 독일어로 국수를 뜻하는 누델(nudel)에서 왔다는 설과 라틴어로 매듭을 가리키는 노두스(nodus)가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로마시대의 유적에서 파스타를 만드는 도구가 발견된 것을 보면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밀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BC 5000년께 중국으로 전래됐다. 황하유역은 기후가 서늘하고 건조해 밀 재배에 적합했다. 국수도 밀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서 번성했다. 거꾸로 중국의 국수 문화가 중동과 유럽에 전파됐다는 주장도 있다. 황하 상류의 라지아 지방에서 BC 2000년께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이 발견돼 중국 기원설의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국수의 기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천 년 걸쳐 형성된 실크로드는 비단만 오간 길이 아니다. 밀과 국수도 이 길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전파됐다. 학자들은 이 길을 누들로드라고 명명했다. 지금처럼 긴 면은 3세기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서 생겨났다. 중국에서 면이 대중화한 것은 11~12세기 송나라 때다. 송나라는 상업이 번성하면서 인구도 급증해 거대 도시가 생겨났다. 도시의 수많은 노동자가 빠르게 한 끼 식사를 때울 음식으로 국수만 한 것이 있을까? 국수는 최초의 패스트푸드였던 셈이다.
젓가락은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의 문화다. 이것이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전파됐다. 현재 세계에서 젓가락 사용 인구는 28%로 포크와 나이프 사용 인구와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 젓가락의 차이다. 원탁에 빙 둘러앉아 식사하는 중국인은 굵고 긴 나무젓가락을 쓴다. 밥공기를 들고 먹는 일본인은 반대로 짧은 나무젓가락이다. 한국인만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쓰고 길이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다. 한반도에 금 철 구리 등의 매장량이 풍부해 일찌감치 금속가공 기술이 발달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말린 국수가 처음 등장한 곳은 동지중해 연안이었다. 5세기 예루살렘 탈무드에 등장하는 ‘이트리아’는 생면 건면 등 모든 면을 가리켰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서 1154년 보통 밀보다 단단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듀럼밀로 만든 건조 파스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전까지는 생파스타 위주였다. 건조 파스타는 생파스타와 달리 장기 저장과 대량 운송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시칠리아가 902~1091년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식 건면이 전래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파스타는 1200년을 전후해 이탈리아 본토와 프랑스로도 전파됐다. 특히 나폴리는 ‘마카로니의 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파스타는 여전히 품이 많이 들어 귀족, 성직자나 먹는 귀한 음식에 속했다.
안도는 라면 발명으로 큰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제조 특허를 포기해 누구나 기술을 이용하도록 했다. 그 덕에 한국에서 삼양라면이 나올 수 있었다. 누구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한 라면은 세계 음식 문화사의 혁명으로 평가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② 안도 모모후쿠가 특허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라면이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식품이 됐을까.
③ 예전에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주로 먹는 음식이었던 라면이 종류도 다양해지고 빈부를 떠나 모든 한국인이 선호하는 음식이 된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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