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다양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다. 수십억 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쌓은 탑이다. 외부 물질에 위협당하면 우리 몸은 적절한 방어 체계를 세우면서 응전해왔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이다. 우리의 도전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무기로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지난 1년간 지구촌을 공격한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는 우리 몸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자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당했다’. 인류는 지금 새로운 체계를 갖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결과물이다.
신화는 원조 백신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영웅 아킬레스는 죽지 않는 ‘면역의 전사’였다.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갓난아이 아킬레스를 스틱스 강에 담갔다가 꺼냈다. 스틱스 강물은 일종의 백신이었던 셈이다. 아뿔싸! 아기를 물에 담글 때 엄마는 아이의 발목을 잡았고 이 발목은 스틱스 강물에 젖지 않았다. 모든 전쟁에서 이기던 아킬레스는 그만 발목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 완벽한 면역은 없다는 암시 아닐까?
어느 날 우두에 걸렸다가 극복한 소젖 짜는 여자는 전염병 환자를 간호해도 천연두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한 농부는 소의 고름을 조금 묻힌 바늘로 자기 부인과 아이들을 일부러 감염시켰더니 조금 앓다가 회복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제너는 소년을 대상으로 민간요법을 다시 시행했다. 제너는 임상시험자 수를 늘렸다. 이 기법은 그때 우두를 부르는 이름인 바리올라이 바키나이(viriolae vaccinae)로 알려졌고,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단어 vacca를 거쳐 지금의 vaccine(백신)으로 정착됐다. 당시엔 바이러스를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없었고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때여서 제너는 그저 효험이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혹시 코로나에 과잉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매년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사고로 적지 않은 사람이 죽는다. 그렇다고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를 모두 없애버려야 할까?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그래서 “생명은 문제 해결 과정(All life is problem-solving)”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지만 풀어나가는 게 생명 활동이라는 말이다. 지금도 결핵, 폐렴, 계절성 독감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양심적 거부자는 있기 마련이다. 최근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원래 이 말은 백신 접종 거부에서 발원했다. 1853년 영국에서 백신 접종 의무화를 시행했는데 종교적 이유 등으로 반발이 일자 예외조항으로 ‘양심적 거부자’를 만들었다.
제약사들은 천연두 이후 어떤 백신 개발에도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고 잘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 바이러스 변이가 매우 빨라서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독감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독감이 또 발생하는 것과 같다.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② 바이러스, 균 등 미생물이 인류에게 해만 끼치는지를 더 조사해보자.
③ 집단면역과 양심적 면역거부 간 관계를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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