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제계에 따르면 최근 가장 활발하게 미래 투자를 하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한때는 국내 주요 기업 중 M&A에 가장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8년 정의선 회장이 경영을 총괄한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달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8억8000만달러(약 9600억원)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글로벌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업체 앱티브와 각각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해 합작법인(모셔널)을 설립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지난해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M&A를 단행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90억달러(약 10조원)에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D램에 이어 낸드 부문에서도 글로벌 2위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 M&A는 최태원 그룹 회장이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지난달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LG마그나e파워트레인(가칭)은 전기자동차 파워트레인을 생산한다. 투자금액은 두 회사를 합쳐 9억2500만달러(약 1조원)다. 2018년엔 LG전자와 (주)LG가 약 1조4000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했다. 그해 6월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뒤 대규모 투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반면 삼성의 대형 M&A는 4년여 전인 2016년 11월이 마지막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80억달러(약 8조7000억원)에 미국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삼성이 원래 대형 M&A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삼성 관계자는 “취약한 분야를 키우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며 “앞으로도 M&A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구속 수감됐고, 2018년 2월 출소한 뒤에도 계속해서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10차례의 검찰 소환 조사와 세 번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재판 출석 횟수는 80번이 넘어간다. 한 경제단체 부회장은 “오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초대형 투자 등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며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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