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관 국립암센터 신임 원장(62·사진)은 담배 제조회사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의사로서 평생을 금연 홍보활동에 힘써온 그는 2015년 정부의 담뱃값 인상과 2016년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을 이끌었다. 두 배에 가까운 담뱃값 인상도, 흉측한 경고 그림도 모두 처음엔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기회가 되는 대로 방송에 출연해 이미 많은 선진국이 경고 그림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국회 앞에선 1인 시위에 나섰다. 십수년간 이어진 그의 노력은 국민의 인식 변화를 이끌었고, 결국 제도 변화와 흡연율 감소로 이어졌다.
‘금연 전도사’인 그가 이달 1일 국립암센터 신임 원장에 취임했다. 인제대 의대 교수로 일하던 그가 2003년 국가기관에서 금연 정책을 함께 이끌어보자는 박재갑 당시 초대 원장의 제안에 응해 처음 센터에 몸담은 이후 18년 만이다. 국립암센터는 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진료로 국민의 암 발병률 및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2000년 설립된 국가 의료기관이다.
서 원장은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암 관리기관 기관장으로서 앞으로는 술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왜 갑자기 술일까.
“술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1군 발암물질’입니다. 1군 발암물질이란 인체에 암을 유발하는 물질로 ‘완전히’ 입증된 것을 말해요. 국민이 이런 사실을 모르죠. 똑바로 알려주는 기관이 여태 없었으니까요. 이젠 저와 국립암센터가 앞장설 것입니다. 술은 절제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시면 안 되는 발암물질입니다.”
모든 음식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여러 정책적 변화를 제안하고, 결국 실현해온 그가 ‘금주(禁酒)’ 문화 확산을 위해선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서 원장은 “술도 담배와 똑같이 흉측한 경고 그림을 술병 외부에 부착하는 것부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술을 TV 등 대중매체에서의 광고 금지 품목에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원장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담배처럼 국민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전엔 담배로 우정을 나누는 문화가 있었어요. 서먹한 사람에겐 담배를 권하며 친해졌죠. 저도 그렇게 담배를 피웠어요. 그런데 요즘 보세요. 누가 담배를 권합니까. 흡연 사실을 오히려 숨기곤 하죠.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이 사회적 우정을 나누는 수단으로 쓰이는 일은 곧 사라져야 하고, 그렇게 될 겁니다. 술이 끔찍한 발암물질이란 사실만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면 말이죠.”
고양=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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