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껏 해봐라"…LG전자의 첫 사외벤처 실험

입력 2021-01-17 17:53   수정 2021-01-18 01:10


“이제는 혁신을 보여줄 차례다.”

최근 만난 LG전자 핵심 경영진은 “그동안 그룹의 경영 이념인 인화와 혁신 중 인화만 부각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업문화가 대대적으로 바뀔 것이란 예고였다. 첫발은 사내벤처의 과감한 육성으로 시작됐다. 혁신 아이디어의 사업화 시도를 통해 느슨한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로 고객 감동을 완성한다”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올해 신년사를 구체화시켰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LG, 애자일 조직으로 탈바꿈
LG전자는 사내 아이디어 프로젝트 ‘EDWO’를 최근 사외벤처로 독립시켰다고 17일 발표했다. 앞으로도 사업성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해 독립시키거나 사내 신사업으로 키울 방침이다.

LG전자는 작년 말 최고전략책임자(CSO)부문 산하에 ‘비즈인큐베이션센터’를 출범시켜 벤처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센터장으로는 서영재 전무가 부임했다. 그는 LG전자 신(新)가전을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일본 출장길에 미용 소형 가전을 본 뒤 아이디어를 떠올려 홈 뷰티기기 브랜드 ‘LG 프라엘’을 기획했다.

LG전자의 첫 사외벤처인 EDWO를 창업한 강현진 선임도 CSO부문에 몸담았다. 그는 온라인 쇼핑에서 딱 맞는 옷 사이즈를 찾아주는 서비스 ‘히든 피터스’를 고안했다. 소비자가 신장과 체중 외에 ‘어깨가 좁음’ ‘하체 발달’ 등 신체 특성을 입력하면 가장 비슷한 체형을 지닌 사람의 착장 사진을 보여준다. 각 사진에는 입고 있는 제품의 정보가 포함됐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다.

LG전자의 ‘벤처 바람’은 구 회장의 경영 방침에서 비롯했다. 구 회장은 올초 신년사에서 “기존의 틀과 방식을 넘는 새로운 시도가 작지만 중요한 차이를 만들고, 비로소 고객 감동을 완성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며 “과감한 도전의 문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사내·외 투트랙으로 상시 육성
비즈인큐베이션센터는 사내벤처와 사외벤처를 투트랙으로 육성한다. 초기 자금과 네트워크, 기술 등을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 LG전자는 지난해 9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LGE 어드벤처’를 출범해 아이디어 250건을 접수했다. 이 중 2개 아이디어를 최종 선발해 키우고 있다.

외부 액셀러레이터와 협업해 수시로 사내 아이디어를 공모한 뒤 사업성 있는 프로젝트를 사외벤처로도 독립시킨다. 실패해도 5년 안에 다시 입사할 수 있다. 최고기술책임자(CTO) 부문은 ‘아이디어 발전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수제맥주제조기 ‘LG홈브루’가 이렇게 탄생했다.

기업의 사내·외 벤처 육성은 세계적인 추세다. 대다수 정보기술(IT)·전자 기업들이 일정 기간 업무에서 빼준 뒤 창업에만 매진하도록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증강현실(AR)게임 ‘포켓몬 고’를 개발한 나이언틱도 구글의 사내벤처 출신이다. 지난 11~14일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쇼 ‘CES 2021’에서는 삼성전자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출신 스타트업 세 곳이 혁신상을 받았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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