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시 문화재(기념물)로 지정한 연수구 동춘동의 영일정씨(迎日鄭氏) 묘역에 대한 인근 주민들이 반발이 거세다. 주민들은 시 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민관 소통이 없었으며, 기념물의 가치도 문화재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지역 기초단체인 연수구도 문화재 지정 재검토 요청안을 시에 제출했다. 인천시는 이달 안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에서 주민 의견을 검토하기로 했다.
영일정씨 가문은 1607년(조선시대)에 묘소를 청량산 아래 동춘동에 조성하고 400년간 인천서 자리잡은 사대부 집안이다. 묘비석을 비롯한 석물 66점을 통해 조선 후기 미술사의 변화를, 종중 소유의 교지·화회문기(재산분배 문서)·완문(조선시대 관아에서 발급하던 증명서)·소지(잡지) 등 고문서에서 조선시대의 정치·사회·경제 상황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게 시의 문화재 지정 이유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은 지난해 11월 묘역에 대해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주민설명회에서 시작됐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지정은 문화재 지정 후 건축행위기준안 마련을 위해 필요한 후속 행정절차다. 당시 주민설명회에 모였던 주변 상가 및 아파트 주민들은 “문화재 지정 고시 사실을 9개월 만에,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도 설명회에서 처음 알게 됐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거주시설 인근에 문화재가 있으면 재건축 등 도시개발에 따른 재산권 침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도 문화재보호 관련법에 의해 일정 반경 안에서는 고도제한 등 건축설계 허용기준이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문화재와 개발제한 대상의 거리를 조정하는 등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곧 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해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는 석물의 경우 다른 묘소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조형물이 포함됐고, 분묘도 보존신고 기록없이 근래 이장해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경기도와 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 이장한 8개 묘는 정식 이장 절차를 무시하고 조성한 것“이라며 "일부 석물은 1992~1995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어떻게 문화재가 되냐“고 되물었다. 그는 ”영일정씨 묘역은 개인집안 선조의 숭배물이며,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혐오감을 주는 시설물”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원회는 재산권 침해 가능성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건축이나 신축 등 사업 시행 시점에서 문화재 관리주체나 지정물 소유자인 종중의 민원이 제기될 경우 문화재 보호 관련법에 적용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일정씨 묘역 인근에는 입주 20년 이상된 노후된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묘역 정문과 일부 아파트는 왕복 2차선 도로 건너편에 있어 거리가 50m도 채 안된다.
인천시에 시민청원을 올린 윤 모씨는 “역사적 고증도 없이 개인의 묘역이 어떻게 인천시의 문화재로 둔갑한 것인지 문화재 지정 관계자에게 따져 묻고 싶다”고 말했다.
관할 관청인 연수구도 분묘 상당수가 이장 조성 사실의 진위 여부, 일부 석물의 현대 조형물,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 등 추가 조사 내용을 담은 문화재 해제 검토 의견을 이달 7일 시에 제출했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과 주민들 거주지는 직간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요하면 제3의 장소로 이전도 검토하겠다는 게 연수구 측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일부 묘가 외부에서 이장돼 왔다고 해서 문화적 가치가 없다고 평가할 수 없다”며 “석물 66점도 영일정씨 종중에서 현대에 제작된 것은 제외하고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는 주민들의 주장과 연수구의 입장을 정리해 이르면 이달 안에 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해 재검토하기로 했다. 시 문화재위원회는 미술, 조경, 사학 등 외부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일정씨 종중 관계자는 “분묘와 석물은 시 문화재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지정된 문화재”라며 “건축행위 허용기준을 동춘묘역에만 적용하는 등 주민들 피해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시와 구청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영일정씨 종중은 묘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내세워 지난 2018년 10월 인천시에 문화재 지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jeff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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