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등 노동계는 노동이사 도입을 통해 의사결정의 투명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우리 경제 체제와 맞지 않는 제도이며, 노조가 경영활동에 지나치게 간섭하려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공부문에 이어 일반 기업에까지 노동이사를 강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들어 교통방송이 노동이사를 선출했고, 지난 연말 몇몇 공공기관의 노동이사가 더 임명된 것을 고려하면 도입 기관 수는 50곳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부산교통공사는 올 상반기까지 노동이사를 임명할 계획이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다. 근로자 신분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다가 이사회가 열리면 근로자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법제화된 제도다.
한국에서는 서울시가 지난 2016년 조례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근로자 100명 이상 지방 공기업은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노동이사를 포함토록 했다. 서울 시내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등 17개 기관에 노동이사가 임명돼 활동했다. 3년의 임기를 끝낸 후 2기 노동이사가 활동 중이다.
현재 국회에는 김경협·박주민·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운법 개정안이 제출돼있다. 기타공공기관을 포함해 340개 공공기관 전체에 노동이사를 도입토록 한 김주영 의원안과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두도록한 박주민 의원안 보다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명시하는 정도인 김경협 의원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공사와 수자원공사 등은 공운법 개정이 완료되는대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노조와 합의하는 등 올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빠르게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동이사제의 사전 단계로 여겨지는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도 확산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를 참관하며 경우에 따라 의결 사항에 대한 질의를 할 수도 있다. 지난해 동서발전과 한전KPS 등 발전 자회사가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주택금융공사와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도 이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 도입 기관은 약 80곳으로 확대됐다.
기업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 중이다. 노조가 추천한 이사를 비상임이사로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노조추천이사제는 임명된 노동계 이사가 이사회에서 활동한다는 측면에서는 노동이사제와 같지만 기업이 자체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하지만 경영계에선 노동이사제가 확산하면 노조가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이사에 강성 노조위원장 출신 등을 추천해 회사 경영을 방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국내의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 아래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경우,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이사회까지 노사 갈등과 대립이 내재화돼 기업 경영 추진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노동이사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이사제가 한국 기업의 주주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은행 자본이 중심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주주 자본을 중심으로 기업이 돌아가기 때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의 모범사례로 여겨지는 독일에서도 기업 경쟁력 약화로 근로자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한국과 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에는 논의 끝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들의 비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노동이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서울교통공사의 영업이익 적자 폭은 지난 2017년 3862억원에서 2018년 5322억원, 2019년 5324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실제 근로자들이 회사 평가를 올리는 게시판인 블라인드에는 서울교통공사가 '워라벨'(일-라이프 밸런스)을 넘어 '라라벨'(워라벨에서 일을 제외한 것)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노동이사를 두고 노조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사내 1노조인 한국노총과 2노조인 민주노총간 갈등으로 노동이사 선거가 중단되기도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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