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주제인 ‘해학’은 풍자, 비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계선 통인화랑 관장은 “팬데믹으로 위축된 일상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보고자 해학의 범위를 넓게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현대 목판화를 대표하는 김상구는 기와 지붕, 제주 비자나무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추상화를 내놨다. 날카로운 칼날로 빚어낸 단순한 선에 작가의 50년 내공으로 더한 깊은 색감이 어우러지면서 판화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울림을 준다.
설치 요소를 도입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40년 경력의 강행복이 작업한 ‘화엄’ 연작은 여러 문양의 목판을 찍은 오색찬란한 종이들을 실로 꿰맸다. 하나의 판으로 여러 장을 찍었으되 직접 손으로 엮고 모은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김희진은 목판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섬세한 손길로 나무판 위에 서울의 풍경을 담고 색을 얹었다. 회화와 조각의 요소가 어우러진 새로운 영역의 작품인 셈이다.
정승원은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화면으로 기록했다. 만화적 느낌의 캐릭터를 찍어내 만든 모빌은 회화를 넘어 설치미술로 영역을 확대한다.
민경아는 목판을 이용해 동서고금이 어우러진 경쾌한 작품을 선보인다. 어둡게 내려앉은 서울의 빌딩숲을 배경으로 민화 속 호랑이가 북촌의 지붕 위를 뛰어다닌다. 머리 위에 멋진 왕관을 쓴 호랑이는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에게 “침착해(Keep calm)”라고 다독이는 듯하다.
수성목판화가 홍승혜는 닥종이 위에 섬세하게 물결치는 색과 선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했다. 판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채도의 향연은 수성물감을 이용해 수없이 겹쳐 찍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하나의 판으로 여러 개를 찍어낼 수 있지만 각각의 결과물이 독자적인 작품”이라며 “판화는 복제가 아니라 복수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대장암 명의’가 목판화로 예술적 재능을 펼치고 있는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도시의 풍경을 경쾌하게 찍어낸 이언정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7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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