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상 기후와 질병 등으로 농축산물 산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통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도매 가격이 30~40%씩 오르고 있지만 그대로 가격에 반영할 수 없어서다. 어떻게든 장바구니 물가에 부담이 안 되게 산지 가격 인상분을 떠안거나 인상 요인을 분산시켜야 한다. 대형마트 등은 미리 확보한 물량을 풀거나 가격 인상분을 흡수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대형마트는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을 사전 매입해 물량을 확보한다. 이마트의 ‘풀셋 매입’이 대표적이다. 산지 농가의 생산 물량 전체를 구매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과 농가의 생산량 전체를 구매하면 특품, 상품, 못난이 사과 등 좋은 품질의 사과와 낮은 품질의 사과를 평균가에 산다. 마트는 특품과 상품을 명절 선물세트 등에 사용하고, 못난이 사과는 저렴하게 팔고, 나머지는 주스 등을 만드는 데 쓴다. 농민은 못난이 사과 등 재고가 쌓일 걱정을 덜게 된다.
채소도 비슷하다. 농가가 밭에 작물을 심을 때 미리 가격을 정해놓고 향후 생산량을 전부 사는 ‘밭떼기’ 거래를 한다. 농산물에 따라 사전 매입 확보량은 전체의 10%부터 90%까지 올라간다.
대형마트는 이렇게 미리 확보한 농산물을 장기간 보관하다 가격이 급등할 때 저렴하게 풀고 있다. 자체 보관센터를 통해서다. 이마트는 농산물 전용 유통센터 ‘후레쉬센터’, 롯데마트는 ‘기체제어(CA)저장고’를 각각 운영한다.
롯데마트는 다음달 초 CA저장고에 보관하던 양파 100t을 풀 계획이다. 양파 소매 가격이 최근 한 달간 16% 오르는 등 상승세가 가팔라서다. 양파는 4월부터 6월까지 수확한 물량으로 한 해를 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수확철에 사 놓고 신선하게 보관하던 양파를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계란 가격은 지난달 대비 29.2% 올랐다. AI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기 전인 작년 11월에 비하면 33.8% 상승했다. 대형마트에서는 계란 가격이 최근에야 올랐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은 지난주와 이번주 계란 1판(특란 30개 기준) 소매 가격을 5000원대에서 6000원대로 올렸다.
대형마트는 마진을 포기했다. 도매 가격 상승분을 내부적으로 감당하기로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올 들어 신선식품 품질을 강화하는 ‘최상의 맛’ 캠페인을 내걸고 전사적으로 식품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란 도매가가 치솟았다고 가격을 따라 올릴 수는 없다”며 “계란은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도 중요한 식품이기 때문에 상승분을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진 포기가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계란을 고가에 구입해야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싸게 살 수 있다면 소비자는 대형마트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계란을 사러 대형마트에 온 소비자는 다른 먹거리도 함께 구입할 것”이라며 “가격이 오르는 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것은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농할(농산물 할인)갑시다’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참여해 이달 27일까지 계란과 무, 배추를 판매 가격에서 20% 저렴하게 판다. 농식품부는 본래 설 대목을 앞두고 28일부터 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AI로 계란 가격이, 한파와 폭설로 무 가격이 급등하자 행사를 앞당겼다. 해수부도 지난 18일 제철 수산물을 20% 이상 할인 판매하는 ‘대한민국 수산대전’ 행사를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행사 기간에 신선식품 가격이 잡히지 않으면 설 대목이 다가오는 만큼 행사가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지원금을 더 부담하거나 마트도 일정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