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회통합 방해하는 야만적 국가정신

입력 2021-01-19 17:42   수정 2021-01-20 00:36

나라의 흐름이 문명에 역행하고 있다. 인류는 품위 있는 자존감을 기반으로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한다. 그것이 문명이며 반대가 야만이다. 국가의 야만성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회의 보편적 규율이 상대적인 약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보호하는가’ ‘제도와 정책이 냉철한 합리성을 유지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가’ ‘공직자들이 행동하는 양심의 기본을 갖추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사회정의의 핵심이고, 문명의 조건이며, 인간 본연의 야만성에 대한 통제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 국가와 공직의 정의와 절제력이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첫째 나라의 정신, 특히 사회적 약자를 긍휼하게 대하는 사회적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가장 힘든 사람들이 요양원이나 구치소, 영세 소상공업장, 취업준비 현장에 몰려있다. 이번 방역 정책은 측은지심이라는 정신적 측면에서 실패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한곳에 몰아놓고 방치했다.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방역은 코로나19와는 맞지 않는 대응이었다. 구치소의 수용자 중 상당수는 재판에서 무죄로 방면된다. 유무죄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수용돼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폐하고 무기력하겠는가. 그런 극단에 처한 국민에게 아무런 방역 대책이나 플랜B가 없었다.

영세소상공인 역시 감염병 이전 2~3년간 이미 극도의 경기 부진을 겪어 왔다. 그런데 정부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매출을 격감시킬 수 있는 조치를 결정했다. 국가책무의 무게 대부분을 떠넘겼다.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먼저 지켜줘야 할 약자들을 가장 괴롭힌 국가는 그 정신에서 야만적이다. 국가정신이 야만적이면 사회는 통합되지 못한다.

둘째 야만성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정책을 감정과 눈물로 정한다. 큰 목소리와 후회나 회한의 공명 정도가 문제를 결정하고 해답도 정한다. 하지만 주홍글씨와 기우제로 국민을 안전하게 할 수 없고, 국리민복을 이룰 수 없다. 아무리 작은 사고나 사회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복잡다단한 인과관계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은 그 복잡성을 이해하고 가장 문제가 되는 병목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문제가 ‘입양’인지 ‘아동학대’인지를 찾는 것은 날카로운 이성의 영역에 있다. 벌을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시를 늘리고 손가락질한다고 악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복잡한 현실에 대한 성찰과 냉정한 점검과 확인이 없다면 정책과 제도는 야만으로 도태된다.

마지막으로, 공직자의 행동이 양심을 외면한다면 야만적이다. 자기는 매뉴얼에 따라 관례에 의해서 일을 처리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부당하면 야만적인 것이다. 선량하고 평범한 공직자의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관료적 행동이 거대한 악마적 결과들을 조장하고 방조했음은 이제는 너무나 흔한 역사의 교훈이다. 구치소의 수감인들이 요구한 마스크를 허락하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수백 건의 카톡을 공유하면서 불법적인 출국 금지를 자행했다. 시민들이 추운 겨울에 긴 시간을 도로에 갇혀 있을 때 구호하는 공무원이 없었다. 직무기술서에 있는 일만 하라고 공직으로 임용한 것이 아니다. 어려울 때 나서 달라고 좋은 대우와 직업 안정성과 노후를 보장해준 것이다. 백신 구입에 실패한 당국자가 글로벌 백신 패권을 비판하는 모습은 양심의 결여가 오만으로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공직자가 월급쟁이로 전락하면 야만적이다. 게다가 오만하기까지 하면 폭력이다.

야만과 폭력에 눌려 국민은 고통스럽고 화가 난다. 각자도생만이 살 길인가? 선의와 보편규범이 전제되지 않은 각자도생은 모두의 파멸을 부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한 깊은 관찰과 각성은 모두의 과제다. 무엇보다도 청년과 후손들을 위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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