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백신'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의심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터키와 브라질, 태국 등에서 중국산 백신이 도입됐지만, 백신의 효과와 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산 백신을 접종키로 한 나라들에서도 백신의 신뢰도가 높지 않은 탓에 접종 시기를 연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터키에선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정부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국민 2명 중 1명꼴로 중국산 백신을 접종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됐습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터키와 브라질,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코로나19에 맞서기 위해 중국산 백신을 택했습니다. 100여 개국이 중국과 백신 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국에서 화이자와 모더나 등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고효능'백신을 선점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산 백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노백 등 중국산 백신은 효능 및 안전성과 관련한 자세한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불안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브라질의 부탄탕 연구소가 브라질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시노백 백신의 예방효과가 50.38%로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한 예방률 70%보다 크게 낮은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물 백신'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만큼, 각국에서 새로 실시된 조사에서도 의혹은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시행된 중국산 시노백 백신의 효능은 나라별로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방효과가 90%를 훌쩍 넘는 mRNA 방식을 택한 화이자·모더나 백신이나 '바이러스 벡터'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달리 초창기 고전적인 백신 제조방식인 '사백신'을 이용한 시노백의 백신은 그 태생에서부터 효능과 안전성 모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입니다.
백신은 최소 70% 이상의 감염 예방효과가 있어야 집단 면역을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독감백신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방어력이 67% 정도에 불과해 독감이 종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감염예방 효과가 70%가 안 된 탓에 독감백신을 전 국민이 매년 맞더라도 집단 면역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독감의 경우엔 코로나 만큼 치명적이지 않고, 이득(면역)과 손해(부작용)의 관계가 모호해서 굳이 전 국민 접종까지 안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코로나 백신에서도 예방효과 70%는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은 시노벡 백신은 86%(초기 발표 수치는 65.3%), 시노팜 백신은 79%의 감염 예방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세한 임상데이터 공개 없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접종을 시작했고, 백신의 방어력에 대한 수치는 들쭉날쭉합니다. 사백신 방식의 백신은 바이러스를 제대로 죽이지 못할 경우, 위험성이 더 커지는데요. 중국이 이런 점에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도 의문부호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효능도 의심되고, 안전성도 확실치 않은 생백신·사백신은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젊으면서도 바이러스와 접할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접종 대신 그냥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권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선 의사들이 "백신을 반대하진 않지만, 시노백은 반대한다"고 들고 일어섰고, 태국에선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태국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만들지 않겠다며, 검증도 안 된 백신 접종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도 중국산 백신의 효능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검증된 백신만 접종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국산 백신에 대해 '물 백신'이라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오히려 화이자 백신 등 서구 백신에 대해 공격을 하는 '철면피 작전' '물귀신 작전'을 쓰고 나섰습니다. 자오리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독일에서 화이자 백신 접종 이후 10명이 사망했다"는 이란 통신사의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국영 CCTV는 BBC나 CNN, 로이터 같은 서방 미디어들이 화이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앞서 중국 국영언론들은 노르웨이에서 화이자 백신 접종 후 23명이 사망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백신의 투명성과 안전성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을 '물타기'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주요 외신의 분석입니다.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국산 백신을 둘러싼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백신 선택권'입니다. 경제력과 외교력의 문제로 우수한 백신을 구하지 못한 나라들은 백신을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중국산 백신을 사용하도록 내몰렸습니다.
백신 확보 늑장 대처로 큰 비판을 받았던 한국은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터키 등보다는 사정이 좋아 보이지만 '백신 선택권' 문제에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11일 "백신이 들어오는 시기나 대상자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하므로 백신, 개인이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며 백신 선택권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백신의 도입 물량도 넉넉지 않고, 도입 시기도 제각각인 만큼 국민에게 백신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이런 정부의 방침이 국민의 광범위한 동의와 협조를 얻기 위해선 백신 접종의 기준과 절차, 시기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재까지 한국이 확보한 코로나 백신중 효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진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절대다수는 유통·관리가 용이한 대신 다소 효능이 떨어진다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아직 미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점도 많은 사람이 찜찜하게 여기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아직 임상실험을 다 마치지 못한 얀센 백신도 적지 않게 도입될 예정인 만큼, '누구는 안전하면서 효능이 좋은 '고급 백신'을 접종하고 누구는 다소 미심쩍은 '2등 백신'을 맞나'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만약 정말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아주 높아져서 백신을 기피하는 상황이 되고, 뭔가 솔선수범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저는 그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문제는 백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백신 차별'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정부 고위관료와 국회의원 등 실력자들은 대다수가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맞고, 일반 국민들은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 백신을 접종하게 된다면 이를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지난주 "접종 우선순위 기준을 수립하여 공개하고 접종 대상을 선정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변수가 많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하루빨리 정확한 백신 접종 우선순위와 백신별 접종 일정 등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적 불안과 전염병 대처에서의 차별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사람만 알음알음 '1등 백신'을 접종하는 상황이 된다면 백신 선택권을 박탈당해 '중국산 백신'의 악몽에 빠져있는 제3세계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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