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객뺏기 지금이 기회"…TSMC 회장 나섰다

입력 2021-01-20 17:32   수정 2021-01-28 18:31


고객사의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를 생산·납품하는 ‘파운드리’는 반도체 사업의 ‘종합예술’로 불린다. 고객 설계에 가치를 더하는 기술력은 기본이고 적시에 조(兆)단위 설비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경영진의 혜안과 결단도 필수다. 대형 고객사를 끌어올 수 있는 네트워크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파운드리 업력 15년의 삼성전자가 35년간 한우물을 판 TSMC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건 기술·투자·네트워크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선폭(전자가 이동하는 트랜지스터 게이트의 폭)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을 개발 중이다. 현재 두 회사의 주력 공정은 7㎚와 5㎚인데 선폭이 좁아질수록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다. 제품 양산 1~2년 전부터 파운드리업체가 고객사를 미리 확보하고 기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 상반기는 삼성전자에 놓쳐서는 안 될 ‘수주 골든타임’으로 평가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 파운드리사업에 ‘메가톤급 타격’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에 대한 결단은 물론이고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수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상 신호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중국, 대만 소식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되는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9일 시장조사업체 IDC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애플뿐만 아니라 퀄컴과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가동하는 TSMC 3㎚ 공정의 고객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퀄컴과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핵심 고객사다. 삼성전자는 ‘고객사의 움직임은 알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란 평가가 우세하다.

TSMC는 회장이 직접 뛰며 3㎚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3㎚ 공정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성능컴퓨팅(HPC)업체와 스마트폰 칩 팹리스(설계전문업체)들과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TSMC가 올해 시설투자에 역대 최대 규모인 30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3㎚ 공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TSMC는 삼성과의 격차를 벌릴 ‘천재일우의 기회’를 갖게 됐다”며 “이 부회장의 부재는 TSMC 추격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삼성전자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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