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장이 그제 공개한 ‘2021 업무계획’만 봐도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 유예 △신용대출 원금분할상환 의무화 △점포폐쇄 사전영향평가 실시 같은 ‘문제적 지침’으로 가득하다. 하나같이 ‘신뢰산업’이라는 업의 본질을 외면하고 여권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한 조치들이다. 오는 3월 종료되는 코로나 대출의 경우 원금 만기 재연장은 모르겠으되 이자 유예까지 강제하는 것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조직 설립목적을 등한시한 결정이다. 이자도 못 내는 한계선상 기업과 소상공인 차주 모두를 무작정 안고 가면 당장의 코로나 피해는 줄이겠지만 팬데믹 이후 경제전반에 부실 뇌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규제에 이은 신용대출 원금분할상환제 도입도 이중삼중의 과잉규제다. 고액대출자 신용대출에는 지난해 말부터 연소득 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가 적용되고 있다. 점포 폐쇄 시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영향평가를 하고 당국에 정기보고토록 하겠다는 발상도 상식 밖이다.
금융당국의 행보가 정치로 뒤덮이고 있다는 의구심도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1주일 전만 해도 ‘공매도 금지조치는 3월에 종료된다’고 강조하던 금융위 입장이 어느새 “속시원하게 말하기 힘들다”로 바뀌었다. 거대여당의 즉흥적 대응에 대한 우려도 날로 증폭되고 있다. “강제않겠다”는 대통령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날 ‘이자 멈춤 특별법’을 들고나왔다. 기업 신용평가 기준 완화를 요구해 신용평가업의 근간을 흔들고, 업권별 법률이 있음에도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을 제정해 중복 규제를 만드는 등 최근 두세 달 새 여당발(發) 반시장적 조치는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시장의 상식을 가볍게 무시하는 여권 행태에서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라는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금융은 복지수단이고 정치의 하위변수일 뿐이다. 유력 대선주자가 ‘최고금리를 연 10%로 제한하자’고 하고, 당 대표는 경영의 핵심인 ‘예대금리 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할 정도다. 그러면서 6대 민간 금융협회 수장 중 5명을 관료와 정치인으로 채우는 등 ‘낙하산’에 골몰한다. 국고채 장·단기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증시 공포지수가 고공비행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포퓰리즘 정치의 습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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