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46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치러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대선 불복, 의사당 폭동으로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추가 테러 위협마저 배제하기 힘든 삼엄한 분위기에서 열리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21분간의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와 ‘통합’을 각각 11번 외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오전 8시45분 질 바이든 여사와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백악관 영빈관)를 나와 세인트매슈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바이든은 미 역대 대통령 중 존 F 케네디에 이어 두 번째 가톨릭 신자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도 동행했다. 취임식 전부터 미국민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오전 10시27분 연방 의사당에 도착했다. 취임식은 2015년 사망한 바이든의 장남 보의 장례미사를 집전한 예수회 신부의 기도로 시작돼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국가 열창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경선 때 바이든을 처음 지지한 국제소방관협회 노조의 앤드리아 홀이 수어를 병행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라틴계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앞에서 먼저 취임선서를 했다. 유명 가수 제니퍼 로페즈의 축하 공연이 끝난 뒤 11시48분, 바이든 대통령이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127년간 가보처럼 간직해온 성경에 손을 얹고 “나는 미국 대통령 직무를 충실히 집행할 것이며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취임 선서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한 장소는 2주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해 아수라장이 된 곳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선서는 11시49분쯤 끝났다.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취임 선서를 낮 12시에 맞춰 하도록 시간표를 짰다. 미 헌법상 새 대통령 취임은 ‘20일 낮 12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취임 선서가 일찍 끝나면서 헌법상 취임까지 11분의 시차가 생긴 것이다. 바이든의 취임 연설은 11시52분부터 21분간 이어졌다. 연설 도중 바이든의 신분은 ‘대통령 당선인’에서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통합을 역설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 때 쓴 표현을 빌려 “오늘 내 영혼 전체가 여기 들어 있다”며 “미국을 하나로 합치고 국민과 나라를 통합하겠다”고 다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를 마친 뒤 12시36분 미 대통령 공식 트위터 계정인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에 첫 트윗을 올렸다. 트윗에서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그것이 오늘 내가 곧바로 백악관 집무실로 가서 미국인 가족을 위한 대담한 조치와 즉각적인 구제책을 마련하려는 이유”라고 썼다.
이날 취임식은 코로나19와 테러 위협 때문에 일반 시민의 참여가 제한됐다. 참석자는 정치인과 외교사절단 등 1000여 명에 그쳤다. 반면 워싱턴DC엔 2만5000명의 주방위군이 배치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참했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도 자리를 함께했다. 대만의 주미대사 역할을 하는 샤오메이친(蕭美琴) 대만 주미 대표가 미국과 대만의 단교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알링턴 국립묘지에 참배한 뒤 오후 3시49분 백악관에 도착했다. 5시15분부터 연방건물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등 17건의 행정조치를 발동했다. 배우 톰 행크스 사회로 진행된 TV쇼에 잠시 얼굴을 비쳤고, 밤 9시55분 백악관 발코니에서 불꽃놀이를 지켜보며 숨가빴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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