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홍 부총리의 소신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정치권 등 요구에 맞서 자기 주장을 폈지만 대부분 홍 부총리의 뜻과 다르게 결론났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엔 사표를 냈다가 반려됐는데, 이번에도 소신이 관철되지 못하면 퇴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 거대여당 등 정치권이 ‘나라 곳간 지킴이들’을 지나치게 핍박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홍 부총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영업자 영업제한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정 총리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어진 글에선 손실보상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손실보상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짚어볼 내용이 많다”고 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는 “외국의 벤치마킹할 입법 사례가 있는지,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하면 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소요 재원이 감당 가능한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재정 당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소명”이라고 했다.
특히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여당에서 제시한 방안대로면 월 24조원이 소요돼 4개월 지급 시 한국 복지 예산의 절반 수준인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며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에 재정 상황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부총리가 본격적으로 ‘노(No)’를 외치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정국에 들어서다. 작년 4월 여당을 중심으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그는 “50~70% 선별 지급으로 가야 한다”고 맞섰다. 기재부 직원에게 ‘결사항전’이란 표현까지 쓰며 버텼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대주주 확대가 무산되자 “책임을 지겠다”며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해 사태가 일단락되긴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제 더불어민주당이 청와대와 협의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양상”이라며 “지난해 11월엔 홍 부총리의 사표를 어렵게 반려했지만 이번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재부에선 정 총리의 질타와 일방적 지시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찍어내리기’ 식으로 정책을 지시하는 일이 계속되면 홍 부총리 아닌 누가 경제 수장을 맡아도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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