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가족 사랑…거장의 '따뜻한 위로'

입력 2021-01-24 18:05   수정 2021-01-25 00:28


작은 집 안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얼굴을 내민다. 집의 양옆에서 이들을 지켜주는 듯한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새 네 마리가 줄지어 날아가는 하늘. 소박하지만 정겨운 한 가족의 일상을 엿보는 듯한 그림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전례없는 전염병으로 세상이 신음하는 지금, 다시 한 번 장욱진(1917~1990)의 그림을 떠올리는 이유다. 단순한 선으로 가족과 집,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에서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작품들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린 작가
생전의 그는 ‘화백’ ‘교수님’이라는 존칭보다 그저 ‘화가(畵家)’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집 가(家)’ 자가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가족이 머무는 공간인 집, 그 집이 있는 자연은 그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나는 누구보다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던 그는 결혼기념일이 있는 4월, 부인의 생일이 있는 9월에 개인전을 열어 자신의 영광을 가족과 함께했다.

이번 전시에는 1950년대부터 그가 타계하기까지의 작품 50여 점을 걸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표작 ‘자화상’이 맞아준다. 세로 14.8㎝, 가로 10.8㎝의 엽서만 한 화폭 안에는 노랗게 잘 익은 논 사이를 걸어가는 신사가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고향인 충남 연기에서 피란하며 말라빠진 물감을 쥐어짜 그려낸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멋지다. 훗날 그는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모습”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완전한 고독을 즐긴 자유인이었지만 그를 지탱한 것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가족도’(1972) ‘가족’(1973)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은 거창하지 않다.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부부와 아이는 살을 맞대고 살아간다. 그의 가족은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 곁에서 경쾌하게 걷는 강아지, 집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새, 나른하게 앉아 있는 소 등은 작품마다 등장하며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한다.
단순한 그림 속 소박한 아름다움
“나는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던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쉽다. 그리고 따뜻하다. 일부러 난해하게 이미지를 꼬지 않고 가족, 동물,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았기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하고 단순하게 담아낸 화풍은 동화 같은 순수함을 전하면서 “괜찮아, 조금은 쉬어가도 돼”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하다.

전시는 그가 타계한 해에 발표된 ‘밤과 노인’(1990)으로 마무리된다. 흰옷을 입고 공중에 떠 세상을 등진 노인의 모습에선 생에 대한 미련보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진다.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라던 그의 말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가족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했던 그 자신의 마음 아닐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에는 리움, 뮤지엄 산과 개인 소장가들이 작품을 제공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28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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