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에 국채 직매입을 강제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고유한 통화정책 운용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다. 또 한은의 국채 직매입은 원화가치를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시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부르는 등 경제교란 위험도 크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Fed)은 국채 직매입을 불허하고 있다. 한은도 부정적이다. 한국은행법 75조(대정부 여신)에 근거가 있긴 하지만 국채 직매입을 아예 의무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작년에 약 8조원의 적자국채를 매입한 것은 국채 수급 불일치에 따른 채권시장 불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만약 한은의 국채 직매입을 법제화하면 예상되는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한은을 ‘현금지급기’로 여겨 국채 발행을 마구 늘릴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국가채무가 올해 940조원에서 1000조원을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자영업 손실보상제 도입을 언급하자 국채 금리가 치솟은 것도 시장에서 국채 남발 가능성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연 1% 선을 넘어 작년 4월 29일(연 1.006%) 이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시장금리가 뛰면 경기활성화를 위해 아무리 초저금리를 유지해도 효과는 반감된다.
이런 부작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과 자영업자가 될 것이다. 국채 남발로 시장금리가 뛰면 부채가 많은 서민·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인플레이션 충격도 전가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의 신인도가 떨어졌을 때 누가 큰 피해를 봤는지 돌이켜보면 자명하다. 비상시국에 피해 계층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국가 재정과 경제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한은의 국채 직매입은 경제약자를 돕는 게 아니라 피해를 더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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