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에 "국채 사들이라"는 與…중앙은행 금기마저 무너지나

입력 2021-01-25 11:42   수정 2021-01-25 14:04


더불어민주당이 자영업 손실보상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한국은행이 이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자마자 곧장 정부에 공급하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기를 무너뜨리려는 여당 움직임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2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은 자영업자 손실 보상 재원을 한은 발권력으로 조달하도록 규정했다. 법안은 “국가는 손실보상금 및 위로금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발행한 국채는 한국은행이 매입하며, 매입 금액은 정부 이관 후 소상공인 및 국민에게 지급한다”고 돼 있다.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민 의원 법안에 대해 한은의 국채 직접인수(직매입)를 염두에 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자영업자 손실보상금 마련 용도로 발행하는 국채를 한은에 바로 넘기는 방식이다.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채를 매입하는 한은의 국채 단순매입(공개시장운영 방식)과는 다르다. 국채 단순매입은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채권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한은이 시장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은의 국채 직매입이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이 곧장 정부의 '금고'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한은법 제75조(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를 법적 근거도 뒀다. 한은이 국채 직매입에 나선 것은 지난 1994년 1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정부의 양곡관리기금(쌀과 보리 등의 수급조절 안정을 위해 마련한 기금)에서 발행한 양곡증권 1조1000억원을 사들인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사례가 드문 데다 법적 근거도 없다. 한국(한은법 75조)과 일본만 직매입을 규정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개발경제 시대 국채시장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정부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한 법안"이라며 "채권시장 규모로 아시아 2위인 한국의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법"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전례를 찾기 어려운 국채 직매입은 부채의 화폐화 논란과 직결된다. 그만큼 부작용이 상당할 전망이다. 국가채무가 순식간에 급증할 것이고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데다 국가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도 수년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국채를 더 발행하면 신용등급 강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중앙은행이 코로나19에 발행되는 국채를 인수하는 국채 직매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사례를 단순 적용하기 어렵고, 국채매입의 부작용이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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