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잇단 ‘부실 수사’ 논란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이 그에 걸맞은 역량과 자격을 갖췄느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안 되는 서민들의 권리 구제가 한층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경찰에게 새로 주어진 권한만큼 관련 전문성이 확보됐느냐다. 변호사 A씨는 “기소나 불기소 여부를 판단하려면 법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며 “당장 관련 역량을 갖춘 일선 경찰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극혐이다’는 댓글은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지만, 사건을 맡은 경찰은 ‘의견 제시 수준’이라며 처벌 대상에서 빼겠다고 한 사례가 있다.
일부 변호사는 경찰에 법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법령과 판례 등을 첨부하느라 일이 늘었다고 전했다. 변호사 B씨는 “업무방해죄는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한 ‘위험법’인데 관련 사건을 맡은 경찰이 이를 모르고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 C씨는 “담당 경찰관의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의를 제기했는데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쩔수 없이 검찰에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불안감을 토로하는 시민도 있다. 경찰이 “문제가 없다”고 덮은 사건이 검찰, 법원으로 넘어가면서 실체가 드러나는 일이 거듭되면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양부모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음주 폭행 사건 등 굵직한 수사에서 경찰은 번번이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견제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사건 관계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검찰이 직접 경찰에 재수사 요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수사 요청은 1회로 제한돼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경찰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점차 시스템 전반을 제대로 갖춰갈 것”이라며 “적어도 ‘대충 수사하는’ 수사관이 없도록 조직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올해 전문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5889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 중 821명은 경력 채용으로 뽑는다. 사상 처음으로 △학대 예방 △사이버 마약수사 △영상분석 등 전문 분야별 경력 채용 방식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국가수사본부 역량을 높이기 위해 변호사 채용 규모는 예년 20명에서 올해 40명으로 두 배 늘렸다.
양질의 ‘책임 수사’가 이뤄지도록 조직도 개편할 방침이다. 경찰청은 올해부터 예비·일반·전임·책임 등 4단계로 수사관 자격을 구분하는 ‘수사관 자격관리제도’를 시행한다. 조만간 전국 일선 경찰서에 심사관·책임수사지도관 800여 명도 배치한다. 2023년엔 수사관의 수사 역량 등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경찰 내 교육 시스템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본청 차원에선 수사 분권화를 이뤄내기 위한 논리 개발에 상당한 인력과 노력을 투입한 반면 일선 경찰의 법적 식견과 수사기법을 교육하는 데엔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경찰 내 교육기관에 우수 인력을 투입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혁/정지은 기자 twopeople@hankyung.com
“경찰, 법령·판례 제대로 몰라”
법조계에선 올해부터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면서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로 제한돼 대다수 민생범죄는 경찰에만 고소·고발장을 제출할 수 있다.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은 검사의 ‘더블 체크(확인)’를 받아야 했던 종전과도 다르다. 현재는 경찰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사건이 그대로 종결될 수 있다.문제는 경찰에게 새로 주어진 권한만큼 관련 전문성이 확보됐느냐다. 변호사 A씨는 “기소나 불기소 여부를 판단하려면 법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며 “당장 관련 역량을 갖춘 일선 경찰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극혐이다’는 댓글은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지만, 사건을 맡은 경찰은 ‘의견 제시 수준’이라며 처벌 대상에서 빼겠다고 한 사례가 있다.
일부 변호사는 경찰에 법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법령과 판례 등을 첨부하느라 일이 늘었다고 전했다. 변호사 B씨는 “업무방해죄는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한 ‘위험법’인데 관련 사건을 맡은 경찰이 이를 모르고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 C씨는 “담당 경찰관의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의를 제기했는데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쩔수 없이 검찰에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불안감을 토로하는 시민도 있다. 경찰이 “문제가 없다”고 덮은 사건이 검찰, 법원으로 넘어가면서 실체가 드러나는 일이 거듭되면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양부모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음주 폭행 사건 등 굵직한 수사에서 경찰은 번번이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고소·고발장 접수 반려 사례 잇따라
올 들어 경찰이 ‘고소 사유가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고소·고발장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수사 의뢰를 일단 반려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변호사 C씨는 “이달 초 한 경찰 수사관이 사건을 따져보기도 전에 피고소인에게 ‘웬만하면 돈을 주고 합의하라’고 한 사례가 있었다”며 “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견제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사건 관계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검찰이 직접 경찰에 재수사 요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수사 요청은 1회로 제한돼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경찰 역량 강화가 관건
이렇다 보니 법조계는 물론 경찰 내부에서조차 “경찰 역량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의 수사 역량이 커진 권한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경찰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점차 시스템 전반을 제대로 갖춰갈 것”이라며 “적어도 ‘대충 수사하는’ 수사관이 없도록 조직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올해 전문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5889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 중 821명은 경력 채용으로 뽑는다. 사상 처음으로 △학대 예방 △사이버 마약수사 △영상분석 등 전문 분야별 경력 채용 방식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국가수사본부 역량을 높이기 위해 변호사 채용 규모는 예년 20명에서 올해 40명으로 두 배 늘렸다.
양질의 ‘책임 수사’가 이뤄지도록 조직도 개편할 방침이다. 경찰청은 올해부터 예비·일반·전임·책임 등 4단계로 수사관 자격을 구분하는 ‘수사관 자격관리제도’를 시행한다. 조만간 전국 일선 경찰서에 심사관·책임수사지도관 800여 명도 배치한다. 2023년엔 수사관의 수사 역량 등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경찰 내 교육 시스템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본청 차원에선 수사 분권화를 이뤄내기 위한 논리 개발에 상당한 인력과 노력을 투입한 반면 일선 경찰의 법적 식견과 수사기법을 교육하는 데엔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경찰 내 교육기관에 우수 인력을 투입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혁/정지은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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