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을 강조해온 정의당에서 당대표가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이내 올라온 장 의원의 입장문 속 두 문장이 수차례 공유됐다. 많은 이들이 마음 한구석에 같은 질문을 놓아뒀기 때문이었을 테다.
같은 날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성추행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피조사자 진술 청취, 방어권 행사가 어려운 만큼 일반적인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했다”며 “그럼에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일부 여권 지지자는 여전히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발언을 쏟아낸다. 인권위 조사 결과는 이들에게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어 보인다. “수사기관도 아니고, 권한도 능력도 없으면 저기 가서 손 들고 서 있으라고 국민인권위에 엄중 경고한다”며 인권위를 조롱하거나 “고소인을 고발해 세상에 모습을 끌어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서슴지 않는다. 끝내 숭고한 모습으로만 우상을 가슴에 남기려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지지한 자신마저도 불의(不義)한 사람이 된다고 여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장 의원의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진보(進步)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진정한 진보라면 동료 시민을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대하지 못한 ‘처참한 실패’를 반성하고, 우리 사회의 성평등 인식을 더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을 진보라고 부르기 껄끄럽다. 개선 방안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을 보면 적폐청산을 외치는 그들 자신이 오히려 청산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옛것을 지킨다’는 수구(守舊)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어서다.
여당과 서울시는 인권위 판단을 받고서야 피해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시작이다.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도 진영논리에서 빠져나와 사실을 받아들이고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일 시간이 왔다. 여권 지지자들이 피해자도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때 진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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