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찌든 후진국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기실 한국의 부동산 정책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줌 투기꾼’이 혼란의 주범이라며 임대차보호법과 ‘세금 폭탄’으로 공급을 막고 선심성 돈풀기에 골몰한 결과가 집값·전셋값 폭등이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위헌적 가격 통제로 대응한 점도 닮았다.
발권력 동원은 통화가치와 국가신인도 추락 위험이 커 대부분 국가가 금지한다. 그런데도 ‘한국형 제도’라 강변하는 것은 작년 4·15 총선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당시 여당은 14조원의 막대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이제 판돈을 10배 넘게 키운 베팅을 감행하겠다니 그 대담함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기업 ‘강제 기부’와 연기금의 수백조원대 여유자금을 탈탈 터는 방식의 ‘이익공유제’도 가시권이다. 전 국민 대상 ‘4차 재난지원금’ 구상 역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1인당 20만원씩만 잡아도 10조원대로, 실업자 60만 명의 실업급여 1년 예산과 맞먹는다.
문제는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 예비비는 벌써 절반 이상 소진돼 3조8000억원밖에 안 남았다. 그렇다면 기존 예산을 재조정하고 국고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계획을 조정하는 게 정석이다. 발권력으로 나랏빚을 한은에 떠맡기는 것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일종의 금기다. 비(非)기축통화인 원화의 신뢰를 추락시켜 두고두고 후폭풍을 불러울 가능성이 다분하다. 유가 급락으로 돈줄이 끊긴 마두로가 발권력으로 ‘페트로 포퓰리즘’을 지속하다 170만%(2018년)라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자초한 게 불과 3년 전 일이다.
재정 팽창과 통화 과잉 발행은 남미 ‘포퓰리즘 벨트’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재정적자로 소비를 늘리고 수요를 창출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결말은 예외없이 ‘짧은 희열 뒤의 긴 인플레와 고실업’이었다.
포퓰리즘은 타락한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적 표현인데도 포퓰리스트를 자처하는 가치 전도의 확산은 한국 포퓰리즘이 중증이라는 징표다. 야당 지도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선수치는 일이 잦은 점도 걱정스럽다. 포퓰리즘의 해독제는 깨어 있는 시민정신이다. 그런데 포퓰리즘 행보를 노골화한 여당 지지도가 급상승 중인 대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포퓰리스트 전성시대는 이렇게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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