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폴란드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손잡고 9억9000만유로(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를 수주했다는 소식이었다. 국내 건설업체가 유럽연합(EU)에서 수주한 플랜트 사업 중 최대 규모다.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해 ‘팀코리아’의 역량을 입증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글로벌 플랜트 엔지니어링업계를 선도하는 유럽 기업들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 국내 건설·엔지니어링기업의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최대 건설·엔지니어링기업이다. 플랜트 엔지니어링 개념이 생소하던 1970년대 설립돼 40여 년간 국내 엔지니어링 시장을 이끌어 왔다. 유럽과 미국의 플랜트 엔지니어링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기본설계(FEED)를 강화해 ‘설계·시공·조달(FEED-EPC)’ 연계 수주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4년 건설업체인 현대엠코를 합병해 국내와 해외 사업 비중이 비슷한 글로벌 EPC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0년 전후 엔지니어링 기술에 바탕을 둔 글로벌 EPC 기업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2009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1조원대 가스탈황설비 플랜트를 수주했다. 플랜트·인프라 엔지니어링(설계) 전문기업에서 명실상부한 ‘플랜트 EPC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로 국내 건설업계의 텃밭이던 중동의 프로젝트들이 심각한 적자를 기록하던 시기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저개발 자원부국인 중앙아시아 국가를 집중 공략해 굵직한 프로젝트를 잇달아 따냈다. 투르크메니스탄 가스탈황설비 플랜트, 우즈베키스탄의 수르길 가스전 개발사업, 칸딤가스처리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축적한 엔지니어링 경쟁력과 철저한 시장 분석이 수주 동력이었다.
중앙아시아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했다. 알쿠두스 발전소(이라크), 알주르 가스 수입 터미널(사우디아라비아), 올카리아 지열발전소(케냐), 테르모타사헤로 발전소(콜롬비아), 발릭파판 정유공장(인도네시아) 등의 수주로 글로벌 플랜트 EPC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3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54위에서 이듬해 10위로 단숨에 10대 건설사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7위를 기록해 합병 시너지가 지속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합병을 계기로 해외와 국내의 균형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전체 매출(6조8000억원) 중 해외 부문이 51%, 국내 부문이 49%를 차지했다. 2010년대 이후 해외 플랜트 시장은 침체를 지속하면서 경쟁사들은 국내 사업 비중을 80%까지 늘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로 안정적인 성장과 대외 리스크에 강한 기업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디지털 전환’ ‘인적 자원(HR)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 구축’으로 요약되는 경영 인프라 혁신 기반도 완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건설업 적용을 선도하기 위해 ‘스마트건설기술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빌딩정보모델링(BIM), 인공지능(AI), 무인자동화 기술 등을 보유한 스타트업 투자도 적극 확대할 방침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신사업 발굴에도 역량을 집중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참여 중인 경기 오산 운암뜰도시개발사업을 스마트시티로 전환해 추진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와 친환경 사업의 확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신규 사업 발굴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