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도체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입력 2021-01-27 18:00   수정 2021-01-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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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이제 원유를 능가하는 ‘자원’이 돼버렸다. 반도체는 전 세계 자동차, 전자, 통신산업의 가동률까지 결정짓고 있다. 한때 ‘자원의 무기화’라고 하면 원유부터 떠올렸지만 반도체 품귀를 해결하기 위한 선진국의 쟁탈전도 그에 못지않다. 최근 미국과 독일, 일본이 대만 정부에 차량용 반도체 증산을 요청하고 나설 정도다.

한때 ‘피크오일(석유고갈)’로 세계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지금은 석유산업이 수요 부족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면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데이터 발생량이 폭증하고, 고용량의 반도체에 대한 시장 수요가 커지면서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5세대(5G) 통신,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 미래 산업을 끌고 갈 기본 에너지 단위가 된 것이다.
비산유국 설움 날린 반도체
재생에너지에 밀려나고 있는 석유와 달리 반도체는 그 어떤 대체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인텔이 2015년 마이크론과 손잡고 D램을 대체하기 위해 시도했던 ‘크로스포인트’가 실패로 끝난 게 단적인 예다.

설사 D램을 능가하는 소자(素子)를 만든다고 한들 이미 촘촘하게 짜인 반도체산업 생태계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우선 새로운 소자를 만들 생산설비를 누가, 언제 만들 것인가. 이미 D램을 장착한 각종 전자제품과 칩셋을 바꾸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차라리 윈도와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OS)를 바꾸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행히 한국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의 ‘이너서클’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1, 2위 업체다. 애플과 구글조차 신제품 특성에 맞는 반도체 확보를 미리 타진해야 한다. 테슬라도 차량용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좌우하고 있지만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강대국을 거래 상대방으로 둔 냉혹한 현실 때문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앞다퉈 삼성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 전망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도 국방수권법까지 끌어들여 파격적인 보조금을 줄 테니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할 태세다. 12%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올리지 않을 경우 자칫 미국 산업 전반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외통수에 몰린 삼성
중국 역시 지금은 삼성의 첨단 공정 베끼기에 혈안이 돼 있지만 ‘반도체 굴기’를 달성하면 언제든 삼성의 등에 칼을 꽂을 태세다. 자신들에게 줄을 서라는 압박의 강도는 반도체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가히 외통수에 몰린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삼성의 리더십 부재는 또 다른 리스크다. 삼성전자의 비전은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133조원의 투자가 적기에 수반돼야 하는 ‘비전2030’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된 이재용 부회장의 형기는 내년 7월 말까지다. 상당한 기회손실이 불가피하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19.3%(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제1의 수출품이다. 1000억달러에 육박하는 반도체 수출액은 석유수입 총액을 채우고도 남는다. 반도체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석유의 시대가 무한정 이어질 것으로 보고 흥청망청하다가 원자재의 저주에 빠져 헤매는 산유국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나. 그 해법을 찾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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