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짐을 거부하다…'비주류' 내추럴 와인의 반란

입력 2021-01-28 17:19   수정 2021-01-29 10:37


장준우 셰프가 말하는 내추럴 와인의 모든 것
※지난주 웨이브 커버스토리 ‘와인’을 보고 푸드 칼럼니스트 장준우 셰프가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수천 년 이어온 와인의 역사에 몇 년 전부터 등장한 ‘내추럴 와인’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 봅니다.

막걸리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손수 빚어본 적이 있다. 만드는 과정은 간단했다. 물에 누룩과 고두밥, 효모를 넣고 신나게 조몰락거린 후 통에 담아 1주일 남짓 두었다. 제법 그럴싸한 막걸리가 만들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윗술을 떠 한 모금 맛보았다. 웬걸, 화사한 꽃내음이 휘몰아치다가 이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복잡 미묘한 맛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판 막걸리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이런 게 진짜 막걸리의 맛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극적인 순간이었다.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보았을 때 느낌도 비슷했다. 기존 와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날로 내추럴 와인의 매력에 빠졌다. 내추럴 와인은 늘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고 새롭다. 내추럴 와인은 무엇이며 또 기존 와인과 무엇이 다를까.
내추럴 와인
‘내추럴’이란 수식어를 보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정확하다. 사실 와인에 있어 인위적, 자연적이란 말은 다소 어폐가 있다.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것 자체가 사람이 개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내추럴 와인의 기술적인 정의는 ‘농약이나 제초제 등을 일절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양조 과정에서 화학 첨가제를 넣지 않고 만든 와인’이다. 가장 큰 특징은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거나 극소량 넣는다는 점이다.

중세엔 와인의 유통기한이 고작해야 1~2주 정도였다. 와인이 식초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이산화황을 첨가한 후부터 와인의 수명은 극적으로 길어졌다. 몇 년이고 장기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와인산업은 급격히 커졌다.

와인 양조 기술은 화학 기술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했다. 돈이 되는 와인을 보다 빠르고 쉽게 만드는 방식이 도입됐다. 첨가물은 작황에 따라 매번 맛이 달라지는 것을 막는다. 때론 좋지 않은 품질의 와인도 마치 좋은 품질처럼 느껴지게 한다. 개성을 잃은 비슷한 와인이 쏟아져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저항운동
내추럴 와인은 이런 기존 체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운동으로 탄생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원래 와인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맛과 향, 생명력을 끌어올리자는 철학에 기반한다.

1960년대 유럽의 내추럴 와인 선구자들은 이산화황의 힘을 빌리지 않고 와인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산화황이 와인에 해로운 균뿐만 아니라 맛에 관여하는 다른 유익한 효모들도 죽여 와인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주범이라고 봤다. 그들은 땅과 포도 안에 있는 자연 효모들을 적절히 활용해 인위적인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고도 생명력 넘치는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와인 농사와 양조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성공하진 못했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맛의 내추럴 와인도 있지만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난해한 개성을 가진 와인도 있다. ‘누가 마셔도 상한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우기는 생산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내추럴 와인은 기성 와인의 시각으로 볼 때 퀄리티가 담보되지 않는 컬트 와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뒤따랐다.
새로운 문법
내추럴 와인엔 분명 기존 와인 문법으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불쑥 튀어나오는 산미, 두드러지는 과실향, 헛간 냄새를 방불케 하는 효모의 풍미 등이다. 하지만 이를 내추럴 와인만이 가진 재미 요소라고 생각하면 훨씬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기성 와인도 평생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지만 내추럴 와인은 이를 능가한다. 잘 만든 내추럴 와인을 맛보면 ‘생명력이 넘친다’는 말의 의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농법, 양조 방식 등 기술적인 개념보다 하나의 철학이자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내추럴 와인이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은 이유는 재미와 저항정신 때문이다. 내추럴파, 전통파로 굳이 편 가를 이유도 없다. 직관적으로 맛을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다. 같은 와인을 두 번 이상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 내추럴 와인이란

유기농 포도만 사용…부패 막는 이산화황 거의 쓰지 않은 와인

장준우 ( 푸드 칼럼니스트·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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