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0억달러(약 132조원). 지난해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 규모다. 엔비디아, AMD,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머니 게임’에서 삼성전자는 보이지 않았다. 보유 순현금 104조원, 반도체 매출 세계 2위란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신중한 행보였다.
앞으론 달라질 전망이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CFO)은 28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기존 사업에서 시장주도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신규 사업에서도 지속성장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며 “보유한 재원을 적극 활용해 전략적으로 시설투자를 확대하고 3년 내 M&A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차량용 시스템반도체기업 등에 거액을 베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업체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한 뒤 현재까지 굵직한 M&A 실적이 없다. 코어포토닉스 등 기술력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인수한 게 대부분이었다. 물밑에선 대형 M&A를 준비했지만 사법 리스크 영향으로 수면 위에 올리지 못했다. 최 사장은 “M&A를 계속 검토했고 많이 준비됐다”고 설명했다.
M&A에 대한 공식 발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옥중 메시지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6일 “삼성은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야 한다”며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수 공백 없이 업무에 집중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차량용 시스템반도체나 전장 기업 등에 대한 M&A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2019년 M&A설이 돌았던 유럽의 차량용 반도체업체 NXP나 인피니언 등이 주요 후보로 거론된다.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2019년 6월 사업설명회에서 NXP에 대한 질문을 받고 “특정 업체를 거론하지 않겠지만 대형 M&A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증설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결정된 바가 없다며 피해갔다. 이날 한승훈 파운드리사업부 마케팅팀 전무는 “미국 투자는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생산시설 최적화 방안은 항상 고민하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메모리반도체의 올해 시설투자 계획과 관련해서도 삼성전자는 “시장 수요에 맞출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을 내놨다.
시황에 대해선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서버와 모바일용 D램, 낸드플래시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서버D램 고객사의 재고조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고, 중저가 5G 스마트폰도 늘고 있다”며 “상반기 내 D램 업황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2017~2018년 같은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대해선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대한 위험요인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시스템LSI사업부는 5G 통합칩셋, 이미지센서, 디스플레이구동칩 판매를 확대해 올해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기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운드리사업부는 고성능컴퓨팅(HPC)칩과 5G칩셋의 수주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지난해 비대면 경제 효과를 ‘제대로’ 본 소비자가전(CE) 부문에도 올해 ‘꽃길’이 깔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공개한 미니 LED TV ‘네오 QLED’와 마이크로 LED TV 등 차세대 제품 중심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생활가전에선 지난해 인기몰이에 성공한 ‘비스포크’ 제품군을 확대하고 출시 국가도 늘려갈 계획이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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