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이란 용어는 1950년대 영국 과학기술자들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빠져나가자 영국왕립학회가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인재경쟁력을 따질 때 필수 지수가 됐다. 1960년대 한국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해외 과학자 유치에 나섰다. 국내로 돌아온 과학자들은 한국을 해외와 이어주는 지식 네트워크였다. 개도국 입장에서 인재가 선진국으로 빠져나가면 손실이지만, 한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인재전쟁이 치열하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가 100조원을 넘어 세계 5위 규모라지만 한국은 여전히 인재 유출에 시달리고 있다. 물량적인 과학기술 인프라만으론, 여기에 애국심을 더해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1990년대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인재 대(大)이동이 있었다. 정보기술(IT) 붐 때문이었다. 인재가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코로나 속 AI 인재 흐름이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선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이동부터 그렇다. 일방 ‘유출’이 아니라 상호 ‘순환’인 점도 눈길을 끈다. 인재들이 글로벌 기업을 수시로 갈아타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재택 근무가 국경 밖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재가 사이버상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A국가에선 교수, B국가에선 기업 연구자 겸직이 늘고 있다. 종래의 인재 유출·입 공식이 다 깨지는 중이다.
이민정책과 교육·연구·취업기회 측면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국은 양질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중국 텐센트 홀딩스가 링크트인 프로필로 파악한 AI 핵심인재 3만6524명의 50%가 미국에 있다. 중국의 AI 특허 출원 성장세가 무섭지만 최고급 AI 특허는 미국으로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혁신생태계가 압도적이란 뜻이다.
한국이 AI 인재 ‘10만 양병’을 외치며 AI 대학원을 더 늘린다지만, 인재 ‘유출’을 ‘순환’으로 바꾸지 못하면 헛일일지 모른다. 인재 순환 열차론 글로벌 기업만 한 게 없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는 해외 연구센터, 인수합병(M&A) 등으로 미국에 있는 AI 인재에 접근하고 있다. 네이버는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은 IT 인프라와 산업 포트폴리오가 좋아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한 AI 실험에 유리하다. 문제는 인재 순환국이 되려면 나라 안과 밖의 혁신생태계가 물 흐르듯 연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법·제도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와 호환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 주체들도 자기 변신이 절실하다.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이 글로벌 인재를 불러왔지만 실패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기업마저 실패하면 한국은 글로벌 인재의 무덤이란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 다행히 한국이 배출한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수장 대부분이 젊고 국제 감각도 있다.
지금이 기회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오프라인 인재 유출국이 온라인 인재 유입국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한국 기업에서 재택 근무가 불편한 이유는 명확한 직무 설계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시스템도 문화도 글로벌 수준이 돼야 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장 단계에 오른 스타트업은 구글 등 빅테크보다 좋은 대우로 AI 인재를 끌어오고 있다. ‘CES 2021’에서 혁신상을 휩쓴 한국 스타트업은 AI 인재가 올라탈 또 하나의 순환 열차다. 해외에 흩어진 유대인 못지않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인재 뱅크’로 바꿀 수도 있다. 못난 정치, 못난 정부만 기업이 최고 인재 플랫폼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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