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모차르트, 조성진 손끝에서 되살아나다

입력 2021-01-28 20:58   수정 2021-01-29 10:55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그레이트홀.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 조성진(26)의 손이 건반 위를 뛰놀면서 경쾌한 멜로디가 펼쳐진다. 부드럽게 선율을 이어가던 순간, 오른손으로 건반을 치며 스타카토를 낸다. 단조롭던 선율이 산뜻한 느낌으로 바뀐다.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94초간 이어진 연주. 24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 K 626b/16’이 조성진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대표적인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모차르테움재단은 조성진이 세계 최초로 연주한 이 연주 영상을 모차르트 탄생일인 지난 27일(현지 시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조성진은 이 미발표곡을 포함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과 ‘핌피넬라’, ‘알레그로 C장조’도 연주했다. '20021 모차르트 주간’ 개막 공연이다. 모차르트 주간은 모차르트 탄생일에 맞춰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축제로, 모차르테움재단이 1956년부터 열어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을 통해 축제를 열었다.

대면 공연은 취소됐지만 재단은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이 깜짝 놀랄 이벤트를 준비했다. 모차르트의 미발표곡을 세계 초연한 것이다. 모차르테움재단은 지난 21일 조성진이 관중 없이 연주한 실황을 미리 녹화해 이날 전 세계 클래식팬들에게 공개했다. 재단 홈페이지와 도이치그라모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공연 실황은 하루 만에 조회수 10만을 넘겼다. 모차르트 주간 예술감독을 맡은 테너 롤란도 비야손은 공연에 앞서 “94초 동안 모차르트의 새로운 세계를 선보이겠다”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연주해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단에서도 화제였다. 94초 길이의 소품곡이지만 청년 모차르트의 역동성과 경쾌함이 묻어났다. 조성진은 이 곡을 오페라처럼 해석했다. 공연에 앞선 인터뷰에서 그는 “모차르트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스토리텔링이다. 피아노곡에서도 오페라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태형 클래식 평론가는 “발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모차르트 특유의 느낌이 났다. 열일곱 살 모차르트답게 젊고 약동하는 천재의 역동성도 느껴진다”고 평했다.

음악학자들은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가 1773년 작곡된 것으로 추정했다. 열일곱 살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순회하며 공연했던 시기다. 당시 모차르트는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며 곡을 썼다. 포르테피아노는 현대 피아노와 달리 소리가 길게 지속되지 않아 섬세한 연주가 필요하다. 음표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피아니스트들에겐 숙제로 남아 있다. 조성진은 건반을 섬세하게 짚으면서도 ‘빠르게(알레그로)’ 진행되는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조성진은 작품을 잘 이해한 것 같다. 현대 피아노로 재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을 통해 248년 만에 빛을 본 모차르트 미발표곡은 어떻게 공개된 걸까. 모차르트는 이 악보를 막내아들에게 물려줬다. 사유는 불분명하지만 오스트리아 공무원 알로이 포스에게 악보가 넘어갔다. 포스는 실수로 재산목록에서 악보를 빠뜨렸고 소유권을 잃었다. 이후 악보는 전 유럽을 떠돌았다. 1880년대 오스트리아 골동품 상인의 유산 목록에 올라간 뒤 1928년까지 경매장에 여러 차례 매물로 나왔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악보를 구입한 한 엔지니어가 가족에게 유산으로 물려줬고, 가족들이 2018년 모차르테움재단에 이를 팔았다.

전문가들이 3년 이상 진위를 확인한 끝에 모차르트가 직접 쓴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울리히 라이징어 모차르테움 연구소장은 “우리 재단은 그 누구보다 모차르트에 대해 잘 알지만 위험을 피하기 위해 4명의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했고 그들도 모차르트의 곡이라고 감정했다”고 말했다. 도이치그라모폰은 조성진이 연주한 이번 곡을 29일 디지털음원으로 공개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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