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이 지긋지긋해 질렀다…보복소비 덕에 잘나가는 名品시장

입력 2021-02-01 09:01  


패션회사의 1년 성적표는 겨울철이 좌우한다. 두껍고 묵직해 단가가 비싼 옷은 이때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올겨울 패션업계의 판매 실적은 코로나19 탓에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이후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패션 매출은 전년 대비 10~20% 줄었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라지만, 패션업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만 해외 명품 브랜드만큼은 이런 불황의 ‘무풍지대’다. 이들 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1년 전보다 오히려 20~3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른바 ‘보복소비(revenge spending)’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보복소비는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외식, 여행, 외출을 마음대로 못하고 ‘집콕’에 지친 사람들이 고가의 물품을 소비함으로써 일종의 보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명품업체 주가는 고공행진 중
원래 보복소비는 결혼한 사람들이 배우자에게 화가 났을 때 비싼 물건을 왕창 사들여 과소비로 복수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보복소비는 일상생활을 잃어버린 데 따른 우울함을 쇼핑으로 해소하려는 심리 때문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untact)’가 대세가 됐다곤 하지만, 대면활동의 위축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주요 명품업체 주가는 판매 호조에 힘입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루이비통, 펜디, 불가리, 티파니 등을 거느린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30% 가까이 급등했다. 까르띠에, 몽블랑, 피아제 등이 소속된 리치몬트 주가는 같은 기간 50%가량 뛰었다.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는 올해 세계 명품 소비가 지난해보다 19% 늘고, 내년이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집콕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푸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미국의 쇼핑축제 ‘블랙 프라이데이’(11월 추수감사절 다음날)도 보복소비에 힘입어 활황을 누렸다. 어도비애널리틱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국 소비자들의 온라인 지출액은 전년보다 22% 늘어난 90억달러(약 10조원)를 기록했다. 중국의 대규모 온라인 할인행사인 ‘광군제’(11월 11일)도 대박을 터뜨렸다. 알리바바는 최근 광군제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3723억위안(약 63조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케이드 맥샤인 골드만삭스리서치 연구원은 “사람들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실업 공포 등으로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있었는데 기우였다”며 “사람들은 집에 머물며 가전, 가구, 집가꾸기 등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고소득층이 소비회복 이끌 것”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가치소비’ 흐름을 보복소비와 연관지어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의 경우 기성세대와 달리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소비를 크게 줄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만족감과 행복을 중시하는 성향 때문이다. 또 불황의 여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고소득층이 선제적으로 소비를 재개하면서 쇼핑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확실해진다면 보복소비는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엘렌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소비자들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르는 1조3000억달러(약 1400조원) 규모의 저축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봉쇄령으로 돈을 쓸 수 없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쌓아놓은 돈에 정부 지원금까지 쌓인 결과다. 이 돈이 올 하반기 미국 내수시장 소비를 주도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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