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씨는 “강남에선 원룸도 겨우 구하는 비용이지만 화곡동에선 방이 두 개인 오피스텔을 계약할 수 있었다”며 “예전엔 출퇴근 거리가 멀어 강남 이외 지역을 전셋집으로 고려한 적이 없지만 최근엔 재택 근무를 하면서 회사와 가까운 집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이사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데다 재택근무가 직장인의 주요 근무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중형 이상 주택의 전월세 수요가 초소형보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직주근접성을 따지는 수요는 줄었지만 보다 넓고 쾌적한 집을 원하는 경우는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한국부동산원에 발표한 '오피스텔 규모별 전세가격지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오피스텔 중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면적은 10월에 비해 0.94% 전셋값이 올랐다. 전용 60㎡ 초과 85㎡ 이하 중소형 면적은 이 기간 0.81%, 40㎡ 초과 60㎡ 이하 소형 면적은 0.53%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용 40㎡ 이하 초소형 아파트의 전셋값은 0.33% 오르는 데 그쳤다.
10월이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코로나19가 ‘3차 대유행’으로 재확산하면서 재택근무에 돌입한 기업들이 늘었다. 시장에서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무직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에 30대 이하 1인 가구들은 주로 주택 선택 시 '직주근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른 연령대보다 오피스텔이나 원룸, 고시원 등 초소형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이들 사이에서 회사가 위치한 시내 중심지보다는 거리가 떨어져 있더라도 외곽의 넓은 주택을 전셋집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판교에서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주로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중개하는 I공인 대표는 “최근 판교에 위치한 IT기업들이 재택 근무를 하는 경우가 늘면서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도 좋으니 방이 2~3개 있는 중소형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찾는 경우가 늘었다”며 “회사로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굳이 전월세를 구할 때 거리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주로 수지나 평촌, 성남 등 판교보다는 전세가격이 저렴한 지역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기까지 1~2년은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는 점도 넓은 공간을 위해 외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부추긴다. 전월세 계약기간이 주로 2년으로 이 기간동안 재택근무 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해서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직장인 남모 씨도 새 전셋집을 서울 외곽이라도 넓은 주택으로 구할 예정이다. 회사가 광화문 부근에 있어 기존 전셋집도 근방에 구했지만 면적이 좁고 가파른 언덕길 중턱에 위치해있어 생활하기가 불편했다.
남씨는 “최근 재택근무를 주로 하다보니 굳이 회사 근처에 집을 얻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강북 끝자락이나 영등포, 구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당분간 코로나19 사태도 이어질 것 같아 방이 두 개 이상이고 평지에 위치해있다면 전셋집 위치는 어디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9월 대기업 대상 조사 결과 53%가 향후 재택근무 확산을 전망했고, 미국 애틀랜타 지역 연방준비은행 역시 지난해 5.5% 수준이었던 기업 직원들의 재택근무 비중이 코로나19 이후 16.6%로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한국은행 또한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 보고서를 내고 국내 유연 근무자 가운데 재택근무 참여율이 지난해 17.4%로 전년 4.3% 대비 큰 폭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코로나19 위기가 진정되더라도 재택근무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 조사국 관계자는 '"재택근무 확산은 직주근접 필요성을 줄여 직원들이 주거비가 보다 저렴한 지역으로의 이주유인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위성오피스 확산도 거주지 분산을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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