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위기감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정권 말만 되면 권력기관들이 돌아선 게 한 두 번이냐. 그 중 법조 쪽이 가장 선두에 서왔다.”
법조계 출신의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탄핵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임 부장판사는 여권이 대표적인 사법농단 사례로 꼽는 세월호 관련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중진 의원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윤석열의 검찰’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싸움에서 완승했다. 추 전 장관 사람들은 날개가 완전히 꺾였다. 추 전 장관의 싸움은 정교하지 못했다. 거대한 검찰조직을 상대로 야구방망이만 휘두르다가 제풀에 꺾인 꼴이 됐다. 추 전 장관의 ‘오른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코너로 몰렸다.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이 갔지만, 글쎄다. 판사 출신의 그가 ‘윤석열 검찰’을 당해낼 수 있을까. 앞으로 검찰은 월성 원전, 울산시장 선거,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수사를 몰아칠 것이다. 그런 판에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언급한 법원 판결은 지난해 말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항소심 징역 2년형,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 정지 인용,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유죄 판결,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1심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을 뜻한다. 전부 여권에 불리한 판결이다. ‘민주적 통제’운운하면서 검찰 제어에 나섰지만, 실패한 마당에 법원마저 정권 관련 수사들에 대한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면 정권 말 ‘큰 일 날 수 있다’는 반응들이 여당 내에서 공공연하게 나돈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탄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판사 출신의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이 문제를 들고 나왔을때만 해도 지도부는 애써 외면했다.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비판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서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 중도층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도 했다. 혹여라도 헌법재판소에서 각하 결정을 내릴 경우 여권에 몰아닥칠 후폭풍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0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가 먼저 나서 탄핵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는 것으로 의원들에게 지도부의 의중을 전달했다. 지도부는 탄핵 문제가 2월 임시국회 쟁점이 될 경우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 처리도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바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소장파들의 강경 목소리에 묻혔다.
탄핵에 신중했던 이 대표가 마음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올해 초 사면론을 꺼냈다가 강경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호되게 당한 경험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총에 참석했던 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가 끝까지 탄핵을 주저할 경우 여권 강경지지자들로부터 또 한번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탄희 의원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탄핵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이 참에 법원을 견제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날 수 있다는 지도부와 의원들의 위기감이 탄핵이 불러올 부정적 측면을 압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고 여론의 역풍을 외면할 수 없어 당론이라는 형식을 택하지 않고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선에서 타협을 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 대표도 의총이 끝난 뒤 페이스북에 “사법 체계를 수호해야 할 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묵과하고 탄핵 소추 요구를 외면한다면 국회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법원에서 그런 위헌적 농단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심 끝에 탄핵 소추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썼다.
이 의원은 2월 1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3일 탄핵안을 표결할 계획이다. 판사 탄핵안은 재적의원(300명)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다. 민주당 의석 수가 174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한다.
그러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실효성 논란이다. 임 부장판사가 2월 말 판사를 그만둔다. 헌재가 2월 말까지 심리를 끝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미 사퇴한 전직 판사를 심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또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탄핵에 나선 것은 정치적 목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더욱이 헌법 제106조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은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라는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법관 탄핵은 사법적 논리가 아닌 정치싸움의 영역이 돼 버렸다. 민주당은 외줄타기에 들어갔다. 법조계에선 임 부장판사가 3월 1일부터는 판사 신분이 아니어서 피청구인 부적격을 이유로 각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민주당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엄청날 수 밖에 없다. 4월 재·보궐선거 전에 이런 결정이 나온다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헌재재판관 구성이 여권 성향이 다수라는 점은 변수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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