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등단 6년차를 맞은 정현우 시인(35·사진)의 시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중 일부다. 최근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창비)를 낸 그의 시에는 이처럼 ‘슬픔’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다. 그는 시를 통해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는 뜻의 ‘슬픔’이란 명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드러나는 순간 사라지거나 부정되고 마는 슬픔이다. 이는 “가난 속에서 호명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젊은 영혼들이 겪는 슬픔을 의미한다”고 정 시인은 말한다. 김언 시인은 “들키지도 드러내지도 않아야 하는 슬픔이라면 그런 슬픔은 내면으로 침전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엔 2019년 제4회 동주문학상 수상작인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를 비롯해 68편의 시를 4부로 나눠 실었다. 정 시인은 첫 번째로 실린 ‘세례’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세상의 절반은/전염병에 눈이 없어진 불구로 가득했다’며 ‘본 적 없는 장면을 슬퍼’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픔으로 새기며 화자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참고 견뎌낸다.
그는 “정서적·육체적으로 헐벗은 상태인 지금 사회에서 인간의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라고 생각한다”며 “힘들 때는 죽을힘을 다해 슬퍼하고 종교적 의미를 초월해 지금 상황이 빨리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했다.
그의 시집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고해록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슬픔을 깨뜨려야/사람이 인간이 될까’(‘유리주사위’)라며 내면의 슬픔을 품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 헤매고,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여자가 되는 방’)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다. 시 ‘컬러풀’에선 기존의 체계와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색’ 중에서 ‘살아 있으려는 색’을 품고자 한다.
정 시인은 ‘시인의 악기 상점’이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인지 시집은 출간 1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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