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문 사립대 인문계열에 다니는 현모씨(25)는 지난해 졸업을 1년 유예하고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취업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학점 4.0에 토익 950점이 넘는 ‘고(高)스펙’을 갖추고도 수시채용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그는 “저학년 때부터 기업 인턴십이나 직무 관련 경험을 쌓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이모 차장은 취업준비생들의 입사지원서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학점과 영어점수는 과거 자신이 입사했을 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데도 뽑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이 차장은 “수시채용에선 ‘직무적합성’이 사실상 합격의 80%를 좌우한다”고 했다.
이공계에 비해 인문·상경 계열을 전공한 취준생들이 더 절박하다. 전공만으로도 직무적합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이공계와 달리 인문·상경 계열은 상당 기간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학을 전공한 한 취준생은 “대부분의 기업이 인사, 재무, 기획 등 분야에서도 이공계 전공자를 선호한다”며 “은행들도 요즘엔 인문·상경계열 학생들을 잘 뽑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문사철(문학·사학·철학) 전공자들은 수시채용에선 지원서를 낼 곳을 찾기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로스쿨과 공기업 준비에 ‘올인’하는 취준생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렇다면 직무적합성은 뭘까. 2019년 10대그룹 중 가장 먼저 수시채용을 도입한 현대자동차 이윤준 책임매니저는 “직무적합성이란 지원자가 수강했던 과목이나 프로젝트 경험 및 해당 직무에 대한 태도 등 다양한 부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시채용에선 중고신입이 유리하다는 건 잘못된 오해”라며 “단순히 짧은 경력만으로 직무적합성을 온전히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최준희 LG전자 인재확보팀장은 “지원한 직무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를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강력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SK 관계자도 “다양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인턴십이나 체험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이인용 동아대 취업지원팀장도 “학점과 영어점수는 3학년 전까지 반드시 준비를 마치고, 직무 관련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저학년 때 인턴십 등 직무 관련 경험을 미리 쌓지 못한 취준생들이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학생인재개발원장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충분히 직무 역량이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면접 관련 노하우가 담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해당 기업에 재직 중인 선배들과의 네트워크를 쌓는 것도 적극 추천했다. 이른바 ‘선배 찬스’다. 한 대학 취업팀 관계자는 “해당 회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재직자”라며 “학회나 동아리에서 취직에 성공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듣거나 모의 면접을 경험해 보면 좋다”고 말했다.
강경민/공태윤/최다은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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